2020년 봄날의 이야기
아침엔 일찍 깨는 편이다. 눈을 뜨자마자 온몸에 통증과 피로감이 느껴진다. 저녁마다 편두통 예방약을 먹은 지 3주는 넘은 것 같은데 아침부터 두통이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럴 거면 예방약이 다 무슨 소용이람. 같은 생각을 하며 두통약을 먹는다. 새벽 5-6시쯤 깨면 비몽사몽 한 상태로 주방에 가 전기포트에 물을 올린다. 몇 달째 일상의 루틴처럼 하고 있다. 음양탕(끓인 물과 찬물을 섞어 마시는 것)이라는 말은 제자 강현이에게 처음으로 들었는데 그 이후론 거의 날마다 마시고 있다. 쌤 음양탕 꼭 마셔요. 지금 일어나서 가서 마셔요. 매일 아침 물을 끓일 때마다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픈 이후로 인생의 많은 것들을 덜어내야 했지만 누군가의 사려 깊은 말은 더 명료하게 남는다. 강현이는 내가 아끼는 밴드부 제자이자 나처럼 섬유근육통을 갖고 있어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저릿하다. 그러고는 방에 들어가 아직 잠에 들어있는 남편에게 말을 걸어본다. 남편은 잠에 들어 있다가도 대답을 하고, 대답을 하다가도 1초 후에 바로 코를 고는 신기한 능력을 가졌다. 졸리면 나도 추가 잠을 자고, 그렇지 않으면 아침 일기를 쓰거나 모닝 다꾸*를 한다.
*다꾸 : 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
8시 반쯤 남편이 나가고 나면 나는 2번 방에서 느릿느릿 하루를 시작한다. 전날 적어놓은 투두 리스트를 보면서 무엇을 먼저 할지 생각한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요새의 우선순위는 항상 글쓰기이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하자’라고 메모도 붙여놓았다.
글은 아침에 쓰는 편이 낫다. 글을 쓰지 않고 있으면 뭔가 중요한 일을 하지 않은 것 같은 찜찜함에 시달리는데 그것을 늦게 한다면 그 기분을 더 오래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샌 그나마 아침의 에너지가 하루 중 제일 낫다. 몸의 체력은 마치 게임 캐릭터의 에너지 바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뚝뚝 떨어진다. 그러므로 꼭 해야 할 일이라면 일찍 하는 편이 낫다. 예전엔 주로 일을 미루는 편이었는데 아프고 난 이후엔 이렇게 되었다.
글은 처음엔 보통 손으로 쓴다. 이후 타이핑하며 한번 고치고, 출력하여 또 고치고, 노트북으로 수정한 후 또 출력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아무리 작년보다 나아졌대도 고정된 자세는 목과 어깨, 특히 견갑골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기에 길게 쓸 수는 없다. 쓰는 도중엔 찜질팩과 꾹꾹이(근육을 자극하는 마사지기인데 우리 집에선 꾹꾹이로 부른다)의 도움을 받지만, 아무리 길어도 한 시간쯤 글을 쓰면 무조건 누워서 쉬어야 한다. 그래서 한번 출력을 하고 나선 누워서 글을 읽다가, 고칠 게 너무 많아 도저히 안 되겠어서 다시 일어나 자판을 두드리고, 또 너무 힘들어서 다시 눕는 것을 반복한다. 그래도 웬만하면 점심 전엔 글 쓰는 것을 끝낸다.
점심쯤 되면 남편에게 연락이 온다. 어보 뭐해, 밥은 먹었어, 영양제 먹었어, 우리 어보 뭐해. 혼자서 글쓰기나 책 읽기, 다꾸에 집중하다 보면 밥 먹는 시간을 잊을 때가 많다. 남편에게 연락이 오면 그제야 밥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감는 것이 힘들 기에 짧은 머리로 자른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2018년에는 단발로, 그러다 기르면 또 어깨쯤 단발로 자르는 것을 반복하다 올 2월엔 커트머리로 잘라버렸다. 이렇게 편한 줄 알았다면 진작에 자를 것을. 머리를 감고, 말리고, 그 무게를 지탱하는 데서 오는 피로를 더 일찍 덜어냈으면 좋았을 것이다.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할 땐 꼭 의자에 앉는다. 이런 일상 활동에서 에너지를 소모해서는 안 된다.
머리를 감은 후엔 머리도 말릴 겸 산책을 한다. 피로감이 심해 걷는 것이 쉽지 않지만, 어떻게든 나갈 구실을 만들어본다.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까, 햇살에 머리를 말리면 편하니까,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고 싶으니까 같은 소소한 이유들.
그리고 내가 산책을 나왔다고 하면 누구보다도 기뻐해 주는 나의 사람, 그의 얼굴을 생각하며 힘을 내본다.
산책은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지 않는다. 같은 30분이라도 언제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집 언저리에 머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같은 거리인데도 큰길 하나 건너 번화가로 나가면 왠지 몸이 몇 배로 더 지치는 기분이다.
섬유근육통의 양상은 항상 변한다. 가장 주요한 증상은 통증과 피로감이고 나는 작년까진 통증이 미친 듯이 우세하다가 올 2월부터 극심한 피로감이 토네이도처럼 나를 덮쳐버렸다. 작년까진 천천히 걸어도 10분이면 다 돌았던 아파트 단지를, 요새는 30분이 걸려 한 바퀴를 걷는다. 다리가 아픈 것은 아닌데 그냥 힘이 없다. 마치 전날 등산이나 소풍을 다녀온 사람처럼 극심한 피로를 안은 상태로 계속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 길에서 어느 노인의 걸음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매우 느렸고 힘겨워보였다. 그곳은 이 도시의 가장 번화한 백화점 근처였고 많은 젊은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쳐갔지만 나는 그에게서 눈길이 멈췄다. 그 모습을 나도 본 적이 있다. 다름 아닌 나에게서.
노년의 시간과 비슷한 질병의 시간을
나는 걸음이 빨랐다. 우리 식구는 아빠부터 엄마, 오빠까지 모두 걸음이 빨랐고, 횡단보도에선 다른 이들을 뒤로한 채 선두로 길을 건너곤 했다. 내 친구들은 나에게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빨리 걷냐고 했다. 그러게,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왜 그리 빨리 걸었을까.
지금의 나는 신호등의 초록색 막대가 두세 칸 정도 남았을 때야 겨우 길을 다 건넌다. 예전엔 항상 막대가 절반쯤 남았을 때 길을 다 건넜기에 신호가 너무 길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내가 너무 협소한 시야를 가지고 살았음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횡단보도 앞의 운전자들이, 내가 늦게서야 뛰어들어 마지막까지 남았다고 오해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전 처음부터 계속 걷고 있었어요. 그것도 아주 온 힘을 다해.
산책 중엔 자주 쉰다. 아파트 단지 내 산책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 때문이다. 곳곳에 앉거나 누워 쉴 수 있는 벤치가 많다. 내가 산책을 나오는 시간은 주로 어린이집이 끝나는 시간이라 놀이터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어린아이들은, 언젠가부터 다른 관점으로 부러워하게 됐다. 아직 통증이나 피로가 들어앉기 전의 無의 몸의 상태. 그런 것을 몰랐던 아주 어렸을 적이 그리울 때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가 너무 까마득해 몸에 통증이나 불편한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게 무엇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걸을 때면 자주 생각한다. 내가 복직할 수 있을까. 복직하면 일을 할 수 있을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을까. 교실에서 맘껏은 아니더라도 일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걸을 수는 있을까. 하루를 버티고 일하는 것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교사는 아픈 걸 아프다고, 집안에 우환이 있다고, 힘든 일이 있다고 티를 내는 직업이 아니다. 교실은 무대와 같다고 십여 년 전 임용고사 2차 면접 때 내가 그렇게 답했다. 그러니 일을 다시 하게 되면 나는 예전처럼 통증을 숨기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게 될 것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그다음이다. 지금도 하루를 무리하면, 그러니까 한 시간 외출할 것을 두 시간 외출해버리면 그것을 회복하는데 며칠이 꼬박 걸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단순한 외출도 아닌 교사 일을 하는 것은 어떨 것인가.
사실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예상치 못하게 외출이 길어지는 날, 바깥에 있는 시간이 정말 힘들기도 하지만 더 힘든 것은 그 후폭풍을 견뎌내는 그 이후의 시간들이다. 한 시간은 하루가 되고, 두 시간은 일주일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오래도록 심한 독감에 걸린 듯 절절히 꼼짝도 못하는 것은 괴롭다.
5월. 이제 세 달이 남았다. 나는 더 나아질 수 있을까. 매번 한 학기 단위로 휴직을 했기에 언제까진 꼭 나아져야 한다는 날짜를 받아놓은 기분이라(하지만 기분이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다) 마음이 항상 촉박했다. 6개월을 쉰다고 하면 마음이 편한 것은 처음 두 달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시한부 휴직도 그저 감사한 일이다. 직업을 잃게 되는 경우도 얼마나 흔한가. 하지만 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프지도 않지 않았을까. 병 주고 약 주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병만 주는 것이 아니라 약도 주니 다행이네.라고 생각을 멈춘다.
산책을 하면 꼭 쉬어야 한다. 몸이 천근만근이다. 산책을 하고 돌아올 즈음엔 택배가 집 앞에 놓여있거나, 곧 택배가 올 시간이 되기에 조금 쉬다가 새로 온 것들을 뜯어보고 써보다 보면 남편이 퇴근한다.
혼자 있을 때는 끼니때를 잊기도 하고 식욕이 그다지 돌지도 않는데 남편과 밥을 먹을 땐 왠지 맛있게 많이 먹게 된다. 밥을 먹고 간식도 먹고, 그것이 늦어지면 야식이 된다. 5년 전의 내가, 그러니까 결혼을 하기 전의 내가 미래의 운명의 사람에게 보내는 노래를 만든 적이 있었다. ‘나에게 와주오’라는 제목의 그 노래에 ‘푸근하고 맘씨 좋은 내 사람과 따뜻한 밥을 먹는 일’이라는 가사를 썼는데 그것이 예언과 같은 것이었는지 나는 매일 푸근하고 맘씨 좋은 내 사람과 따뜻한 밥을 먹고 있다. 저녁을 먹고 둘이서 이야기도 하고 TV도 보다가 어느새 각자 할 일을 한다. 사실 남편은 말을 하다가도 어느 순간 잠에 들어버리고, 나는 잠든 남편에게 말을 몇 번 걸어보다가 2번 방으로 들어가 취미생활을 시작한다.
요새 글도 쓰고 관련 자료도 찾아보느라 왠지 취미생활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 밤에는 하루를 마무리하며 오늘의 투두 리스트에 체크도 하고, 다음 날의 할 일 목록도 쓴다. 다이어리에 오늘의 메모지를 붙이고, 약간의 글을 더 쓰기도 한다. 왠지 하고 싶은 날엔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를 이용해 다꾸를 더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아무것도 꾸미지 않고 그냥 일기만 쓰기도 한다. 요새 만년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더니 손과 팔에 힘을 덜 주고도 글씨를 쓸 수 있게 되어 글쓰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그렇게 취미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새 졸음이 턱 끝까지 내려온다. 그때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입으로는 잠이 안 온다며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와서 보면 거의 잠들기 직전의 표정을 하고 있다. 어보 지금 완전 졸린데?라는 말에 아니야, 아니야 라고 서너 번쯤 현실을 부정하다가 나도 그 잠을 못 이길 정도가 되면 안 되겠어 으아아아 라며 1번 방으로 달려간다.
방에 들어가면 남편이 이미 나를 위해 가습기를 세팅해놓아 공기가 포근하다. 나는 베개를 다리 쪽에 놓고, 항상 듣는 취침용 음악(근 몇 달간은 변함없이 루시드폴이다)을 정말 내 귀에만 겨우 들릴 정도의 볼륨으로 틀고는 30분 예약을 맞춰놓는다. 요샌 뼈가 시려서 수면양말, 발토시도 신고 손목을 위해 팔 워머도 잊지 않고 착용한다. 내가 잠들기 바로 전 의식을 모두 마치고 침대 맡 스탠드까지 끄면 남편이 내 볼에 손을 대며 ‘항, 오늘도 수고했어요. ‘항 오늘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사랑해요 항’등등의 따뜻한 말들을 해준다. ‘항’은 언젠가부터 쓰고 있는 우리만의 언어인데 그것으로 거의 모든 의미와 감정을 전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항’ 따스함까지 받고 난 후 노래를 한곡, 두곡쯤 듣다 보면 잠에 든다. 그렇게 지친 하루가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