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근육통 환자의 임신과 약 복용
계획한 임신은 아니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 후 6개월 정도는 임신이 되어도 상관없다는 쪽이었고, 2019년 7월 초에 발간된 송해나 작가의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를 읽은 후 내 몸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임신을 무기한 보류하자고 결정한 지 일주일쯤 된 시점이었다.
남편과 나는 2018년 12월에 결혼했다. 2017년 8월에 시작된 통증이 다음 해 2월 섬유근육통으로 번지며 일 년을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살았다. 결혼과 동시에 아이 이름을 먼저 지어보던 건 나였다. 별 예외 없는 사회적 기대 속에 자라 결혼과 임신/출산을 동의어로 여겼다. 온몸에 통증이 덕지덕지 붙어있는데도 임신과 출산을 고려했던 것은 간절하게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아파서 일을 쉬고 싶은데 도무지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섬유근육통은 완치가 없기에 치료기간을 명시하는 진단서를 써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몇 곳에서 들었고, 그런 나에게 한 아이 당 최대 3년을 쓸 수 있는 육아휴직은 내가 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 같아 보였다. 물론 그것은 단순한 휴직이 아니라 임신과 출산, 육아를 위한 시간이기에 아파서 쉬고 싶다는 내가 육아휴직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히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런 어리석은 생각이라도 하지 않으면 일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모든 섬유근육통 환자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아픈 것을 증명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해는 바라지도 않지만 겉으론 멀쩡해 보이니 믿어주지도 않는다. 나도 그런 것들에 지쳤고, 진단서를 받느라 이곳저곳에서 씨름을 하는 것 말고 그저 모두가 인정해주는 이유로 일을 좀 쉬고 싶었다.
경험하지 못한 자의 무지를 일깨우는 데는 먼저 간 사람의 지식과 책이 큰 도움이 된다. 7월 초, 송해나 작가의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를 읽고 나는 그제야 임신과 출산의 민낯을 보게 되었다.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열 받아서 매일매일 써 내려간 임신일기》
임신과 출산의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저자는 생각했다. 유전자가위로 난치병도 고치는 21세기 현대의학이 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신체적 고통은 줄여주지 못하는 걸까. 왜 아직도 세상의 모든 여성이 오래전 인류와 같은 방법으로 아이를 낳아야 하는 걸까. 이렇게 고통스러워야만 엄마가 될 수 있는 걸까.
[출처 : 알라딘 인터넷서점 책소개 ]
2학기 복직을 고민하던 때도 사실, ‘이러다 임신이 되기라도 하면 별 고민 없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바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미리 예측해보았으니 지금의 몸 상태로는 임신과 출산을 절대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휴직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것은 나였고 남편은 처음부터 내 몸을 걱정했다. 우리는 둘 다 한 일 년 정도는 임신은 미뤄두고 약도 맘껏 써보며 나의 건강 회복에만 집중하자고 했다.
그리고 열흘쯤 지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임신 계획이 없다며 가려움증을 치료할 요량으로 대학병원에서 한 달 치 약을 받아온 지 이틀, 학교에 휴직 연장 서류를 내고 온 지 겨우 하루가 된 날이었다. 멍했다.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을 확인하고 유 원장님에게도 가서 임신 사실을 알렸다. 그는 축하한다며 열 달 후에 보자고 말했다. ‘약은 이제 먹으면 안 되나요?’ ‘네.’ ‘그럼 이제 어떻게 자죠.’ ‘임신을 하면 호르몬 때문에 잠이 잘 올 겁니다. 아마 그 어느 때보다 통증도 훨씬 나을 거예요.’ 그는 자꾸 뭐가 다 괜찮을 거라고 하는데 하루아침에 내 건강의 가장 큰 조력자를 잃은 나는 별로 괜찮지가 않았다.
양쪽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모두 축하해주셨다. 웃으며 좋아하시니 우리도 조금 웃음이 났다. 엄마는 나에게 너 그 약 먹는 거 어떻게 하냐고 물으셨다. 병원에 이미 갔다 왔고 이제 안 먹을 거라고 하니 안심하셨다. 내가 약 없이 어떻게 통증을 견딜지,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무 걱정도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내가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한 후엔 더욱더 내가 먹는 ‘그 약들’에 대해 걱정스레 언급하곤 하셨다. 임신하려면 ‘그 약들’을 끊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엄마. 지금 내가 자는 게 더 중요해. 엄마. 엄마, 내가 사는 게 더 중요하지 않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첫 번째 밤이 되었다. 평소엔 9시쯤 ‘취침 전’ 약(수면제+몇 가지 다른 약들)을 먹었는데 약효가 발휘되기 시작하면 통증을 조금 덜 느낄 수 있었다. 수면제는 중추신경계의 스위치를 내리는 것이고 통증을 감각하는 것도 신경계의 작용이니 수면제가 통증차단의 기능까지 한 셈이다.
수면제를 먹고 잠이 들기까지의 그 두 시간만이 나에겐 하루 중 유일하게 아프지 않은 시간이었다. 통증은 주로 하루의 끝을 향해갈수록 점점 더 맹렬해졌고 저녁쯤 되면 나는 정말 아파서 잠도 못 잘 지경이 되었다. 그럴 때 취침 전 약을 먹고 중추신경계의 스위치를 내리면 나는 하루에 두 시간만은 그나마 살만 했다. 그 어떤 진통제도 효과가 없었고, 불면증 때문에 먹는 약이 의도치 않게 통증 조절에 도움을 주었다. 통증환자로 살아온 지 2년 남짓, 나의 유일한 믿을 구석이자 통증 조절 도구는 취침 전 약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약을 먹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통증은 심해졌다. 10시, 11시, 12시. 아파서 잠도 못 자고 엉엉 우는 나를 보며 남편이 그냥 약을 먹자고 했다. 그날은 약을 먹었다.
다음날, 필라테스 센터에 가서 임신 소식을 전했다. 나중에 산후 필라테스를 하러 오라고 했다. 나의 건강 조력자가 이렇게 또 떠났다. 나에게 웃으며 축하한다고 하는데 지금 이런 몸 상태의 내가 임신한 것이 대체 축하받을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다들 덮어놓고 축하만 하는 걸까
왜 아무도 내 걱정은 하지 않는 걸까
세상엔 이상한 설화 같은 것이 떠돈다. 애를 낳고 나니 체질이 바뀌어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다는 둥, 임신하면 다 괜찮아진다는 둥 하는 이야기. ‘저희 누나도 맨날 여기저기 아프더니 애 낳고 나선 하나도 안 아프다던데요?’라고 속없이 웃으며 말하는 동료 남자 교사를 볼 땐 한숨이 나왔다. 그게 정말 안 아픈 거겠니, 애들 챙기느라 자기 몸 아플 시간도 없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몇몇 여성들에게도 듣게 되자 나와 남편은 그 이야기를 조금은 믿고 싶어 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임신은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니 내가 임신과 출산 이후 체질이 격변하는, 그러니까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임신과 출산을 겪고 몸이 바스러진 여성들이 더 많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100명 중 하나라도 내가 운이 좋은 경우일 수도 있으니 우린 그런 가능성을 믿으려고 했다.
그날 밤엔 약을 먹지 않았다. 먹지 않아야 하는 거라면 자꾸 허용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당연히 잠에 들지 못했고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단 한순간도 쉬지 못한 나의 신경계는 온몸의 통증을 그대로 전부 다 느꼈다. 한숨도 못 자고 밤을 새우는 건 아프기 전에도 힘들었다. 아픈 이후엔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9개월을 더 살아야 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불면증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잠을 자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통증은 잠을 잘 때만 멈췄다. 그런 쉼표도 없인 살 수 없었다.
밤을 꼬박 새우고 병원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유 원장님에게 갔다. 나는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으며, 약을 먹지 않으면 통증 조절이 불가능하므로 못하겠다고 했다. 목적어를 흐렸다. 그는 엄마의 몸이 버티지 못한다면 그런 아기는 자연적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라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것이 나에게 평생 트라우마가 될 것이라고 했다.
임산부에게 허용이 된다는 약들로 처방을 받아 병원을 나왔다.
본격적으로 임신 초기에 접어들며 묘하게 서글펐던 것은 임신 초기 증상이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섬유근육통 증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보통 몸살과 미열로 임신을 알아차린다는데 그건 이미 내가 기본 값으로 가지고 있는 증상이었다. 손발이 저리고 금세 지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임신 초기 증상’으로 검색해 수백 개의 글을 읽으며 나는 이런 것들을 그냥 일상으로 달고 살았다는 것이 조금 서러웠다.
입덧이 꽤 빨리 시작되었다. 5주 차쯤. 게다가 나는 빈속이면 울렁거리고, 먹는 동안에도 속이 답답하고, 먹고 나서는 소화가 잘 안 되는 입덧 더하기 먹덧 더하기 체덧이었다. (토덧도 있었다.) 냄새에 민감해졌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찌나 식욕이 도는지 아침에 일어나 24시간 배달음식점에 음식을 주문해 먹기도 하고, 생전 먹지도 않던 마카롱을 많이도 먹었다. 어지러움, 울렁거림, 그런 괴로운 임신 초기 증상을 모두 다 겪었다. 평범한 임신부 생활을 7월 말까진 했던 것 같다. 입덧 약을 먹지 않으면 집안에서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건 남들도 겪는 것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평범했다. 그리고 8월 초 주말, 두통이 시작됐다. 그 두통이 내 인생 최악의 통증일 줄은, 내 몸의 편두통 인자를 처음으로 발현시킨 사건일 줄은 그땐 짐작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