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가게에 옷 141벌을 기부했다
나는 옷을 좋아했다. 지출의 절반 혹은 그 이상을 옷에 썼다. 한주에 같은 옷을 입고 출근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수업시간표는 요일별로 짜여 있으니 같은 요일에 동일한 코디가 중복되지 않도록 신경 썼다. 옷 입는 것이 직업도 아니면서 유난스럽게도 나는 그랬다. 학교 가는 것이 즐겁지 않아도 옷 입는 즐거움으로 아침의 나를 집에서 나서게 할 수 있었다. 옷이라도 원하는 걸 걸치고 싶었다. 그런 재미라도 있어야 그나마 출근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워낙 칭찬에 후하니 ‘패셔니스타’ 같은 낯 간지러운 호칭을 듣기도 했다. 옷을 잘 입는단 소리도 꽤 들었지만 사실 그 정도로 많은 옷을 입어보면 누구나 옷을 잘 입게 될 것 같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오기 전 투룸에 살 때는, 방 하나가 온전히 옷으로만 가득 차있었다. 인터넷 쇼핑몰 택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도착했고 그렇게 옷을 사고, 입는 것이 세상 즐거웠다. 아프기 전까지는.
그런 나에게 브레이크를 건 것은 이제 옷에 드는 돈을 좀 줄여보자는 다짐이나 더 이상 수납할 공간이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아닌 몸의 변화였다. 2018년 4월, 알 수 없는 이유로 피부가 예민해졌고 나는 매우 부드러운 소재가 아니고선 입지 못하게 되었다. 옷의 소재가 한정되니 입을 수 있는 옷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그때부턴 더 이상 디자인으로 옷을 고를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레이온, 폴리우레탄, 모달 같은 것만 찾아다녔다. 옷을 사랑하던 패셔니스타 자리에선, 자연스럽게 내려오게 되었다. 더 이상 예쁜 옷을 입을 수 없다. 리넨이나 레이스 같은 단어만 봐도 몸의 촉각이 곤두서는 느낌이다.
(05 극한의 고통, 가려움증 https://brunch.co.kr/@pisceswriter/9)
그리고 통증의 시간을 보내며, 그러니까 예전처럼 충분히 운동하지 못하며 나는 당연히 살이 쪄버렸다. 우리나라의 기성복 사이즈는 참 야박하다. 라지 Large만 넘어도 옷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니. 나는 키가 커서 마를 때도 미디엄, 라지 사이즈를 입었기에 우리나라 의복의 ‘정상 범주’를 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빅사이즈, 게다가 옷의 소재까지 따져야 하는 나는 이제 옷을 사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 되었다. 세상에 입어보고 싶은 옷이 너무 많아 하루가 멀다 하고 옷 택배를 받고, 자주 가던 인터넷 쇼핑몰에선 VVIP 고객이 됐던 나는 이제 없다. (VIP 아니고 VVIP 맞다.)
그리고 아픈지 일 년이 지나 나는 옷방 앞에 섰다.
그동안 조금씩 버리긴 했지만, 아끼는 옷이라 차마 버리지 못한 옷들이 남아 있었다. 이미 몇 번의 옷 버리기 시도에도 살아남은 옷들, 언젠간 나아지겠지 하는 기약 없는 희망 때문에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자리만 지키고 있는 옷들. 나는 그 옷들을 모두 치워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옷은 나에게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 옷을 입고 갔던 곳, 했던 일, 만났던 사람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감정 물건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옷걸이에서 옷을 하나하나 빼냈다. 내가 아직 건강했을 때 음악 페스티벌에 입고 갔던 옷,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할 때 입었던 옷(날짜도 기억한다), 가장 친한 친구 결혼식에 갈 때 입었던 옷을 꺼내 정리하며 마음이 시렸다. 옷을 정리하는 것은, 마치 내가 그 옷들과 함께 했던 청춘의 시간들을 정리하는 것 같다 여겨졌다. 나의 이십 대와 삼십 대 초반이, 가장 건강하고 가장 활발하고 생기 넘치게 이곳저곳을 누비던 나의 시간이 나의 옷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한쪽에 따로 챙겨두었던 운동복도 챙겼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던 기간이 길었고, 바디 프로필도 찍었다. 그 모든 것이 끝없이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언젠간 다시 건강해져 운동을 할 수 있을 거라며 사두고 택도 뜯지 못한 것이 절반이었다. 나의 빛나던 시절과 함께 미련도 상자에 담아버렸다.
거의 300벌의 옷을 골랐다. 절반은 버렸고, 상태가 좋은 옷들은 따로 잘 접어 박스에 담았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편지를 한 장 썼다. 옷을 정리하며 나는 단순히 ‘아프기 전의 나’가 아니라 청춘의 나와 이별하는 느낌이 들었다. 통증이 하필 청춘에 조금 일찍 마침표를 찍는 것 같은 서른셋에 와버린 것이 참 얄궂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편지를 쓰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나의 옷과, 나의 시간을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녕, 나의 반짝이던 시간들.
[당시 썼던 편지 전문]
TO. 아름다운 가게
20대를 지나서 이제 입을 수 없는 옷도 있지만 대부분은 제가 작년부터 아픈 후 입을 수 없게 된 옷들입니다.
피부가 예민해져서 더 이상은 입을 수 없는 재질의 옷들, 아프기 전처럼 열심히 운동할 수가 없어 필요가 없어진 운동복들을 보냅니다.
이 옷들은 저의 건강했고, 자유로웠던 시간들의 기록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입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쉬이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지만 이젠 마음을 내려놓고 이렇게 다른 이들에게 보냅니다.
옷들을 정리하는 건 저의 빛나던 이십 대 후반-삼십 대 초반을 정리하는 듯 한 시간이었습니다.
아프고 난 후 많은 걸 포기했지만, 한가득 쌓여있던 옷들은 아직 놓지 못한 제 마음의 미련 조각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옷장이 비어버린 만큼 설명하기 어려운 허전함과 쓸쓸함이 밀려오지만, 저는 이제 아무 옷이나 입을 수 없는 제 자신을 더 확실히 인정해야겠지요.
저의 건강하고 행복했던 시간들을 이 상자에 담아 보냅니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이 옷을 입고 운동도 하고, 친구 결혼식에도 가고, 페스티벌에도 놀러 가세요.
제가 잃은 자유가 누군지 모를 당신들에게 가닿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9.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