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아픈 이의 그리움 보관함
그리움이 커지는 날이 있다. 편두통이 이어져 3주 만에 산책을 나간 날, 예진 생각이 났다. 내가 이렇게 집 주변만 겨우 걷다가 공원도 걷게 되고 더 멀리 나갈 수 있게 되는 날이면 그 아이를 만나러 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예진은 내가 스물아홉에 가르쳤던 제자였다. 예진은 유독 나를 잘 따랐다. 사랑을 많이 받았고 받은 사랑을 가득 주었다. 따뜻했던 한 해였다.
아픈 이후로도 매년 스승의 날이면 예진에게 메시지가 왔다. 스승의 날에 생각나는 건 쌤밖에 없다고, 보고 싶다고, 잘 지내느냐고 묻는데 나는 잘 지낸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잘 지내고 있지 못했다. 일 년에 딱 한 번인데, 단 하루인데도 나는 잘 지내고 있는 적이 없었다.
그저 몸이 아파 학교를 쉬고 있다고 말했을 뿐이지 어떻게 아픈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다음 해에도 여전히 몸이 아파 쉬고 있다고 말하니 작은 문제가 아닌 것만은 알았을 것이다. 예진은 그저 건강하길 바란다고,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항상 보고 싶었다. 우린 여전히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데 얼굴 한 번 보질 못했다. 몸이 아픈 이후 좌절하고 또 좌절한 일상이었지만 만나자는 제안을 매년 거절해야 하는 것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마음이 쓰렸다.
올해 스승의 날에도 어김없이 예진에게 연락이 왔다. 이제 겨우 스물 넷인데 그동안 뭘 얼마나 열심히 일했던 건지 가게를 열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자기 몫의 책임을 짊어진 아이가 든든하고 대견했다. 가게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포털에 검색하니 리뷰가 너무 많아서 가게에 가면 아이가 너무 바빠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았다.
보고 싶다고 했다. 언제나처럼 예진은 나에게 잘 지내냐며,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약을 먹고 일찍 잠에 들었고 아침에 깨선 오래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다.
‘쌤도 우리 예진이 많이 보고 싶은데 아직 만날 약속을 하고 지킬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야. 빠르면 올해 말에나 볼 수 있을까? 몸 좀 나아지면 우리 예진이 만나는 거 꼭 기억하고 있을게. 아직 집 가까이 말고 외식하러 나가는 것도 잘 못하지만 혹시나 가능해질 때 가게도 꼭 놀러 갈게. 마음은 엄청 보고 싶어. 몸이 안 따라줄 뿐이야. 예진아, 오늘 하루도 힘내고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 쌤은 뿌듯하고 든든해.’
스승의 날은 신기루 같다. 하루 동안 받은 따뜻한 기운으로 또다시 일 년을 살아간다. 연락이 온 대부분의 아이들과 몸이 나아지면 만나기로 했고, 그건 예상은 할 수 없지만 먼 미래에나 가능한 일일 테니 머릿속에서 지우려 노력했다. 곧 볼 수 있을 거라는 말로 3년을 지나 보낸 터였다. 또 얼마의 시간이 더 흘러야 할지 모르니 들뜨지 말자며 외롭고 고독한 최소한의 나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예진의 생각은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진이 운영하는 가게는 내가 재활을 하는 운동 센터에 가는 길 근처에 있었다. 여기서 핸들만 꺾으면 바로 네가 있는 곳일 거야. 나는 그 거리를 지나며 그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올 때면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해 가게를 찾아볼까 싶었지만 집과 운동센터를 오가는 것, 그 이상을 할 에너지가 없었다. 나는 거의 매일 편두통에 앞이 흐렸고 운동이 끝나면 집에 가 오래 쉬었다. 차가 있으니 가게 앞까진 갈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모든 것은 할 수 없었다. 4년 만에 만나는 아이에겐 꼭 밝게 웃어주고 싶었다. 그런 상태론 갈 수 없었다.
한동안 몸이 좋지 않아 산책을 할 수 없었다. 운동을 가선 내 몸을 무리해서 쓴 것에 혼이 났고 매일 남은 편두통 약 개수를 셌다. 그날은 새벽엔 약을 먹었지만 오후가 되자 좀 걸을 수 있게 된 날이었다. 3주 만에 운동화를 신고 바깥에 나왔다. 그리고 그 아이가 생각났다. 보고 싶었다.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어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도 어른이 되었지만 나는 더 오래 산 어른이 되어 이럴 때는 그리움을 삼켜야만 한다는 걸 알았다.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을 때, 보고 싶다는 말만 허공에 띄워 보내고 싶진 않았다. 보고 싶다는 말보다 산책 한 번이 그 아이에게 가까이 가는 길임을 알았다. 철퍽철퍽 힘없이 걷다 잠시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며 그리움을 삼켰다.
예진은 내가 교사를 하며 음악을 하는 것을 모두 지지해주었다. 이미 8년이나 지나버린 일인데도 따뜻한 말들이 귓가에 선했다.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나에게 예진은 내가 행복하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 말한 적이 있지만 내 공연을 따라다니겠다 말하던 그 아이의 얼굴이 어제 일처럼 떠올라 멈칫했다. 내가 아픈 사람을 제외한 다른 누구라도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예진아,
네가 지척에 있는데도 거기까지 갈 힘이 없어서 난 이렇게 편지를 써.
선생님도 음악도, 아무것도 그만두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쌤은 두 개 다 그만둬서 어떡해? 보고 싶어도 아무도 보러 갈 수도 없는데 어떡해?
나는 겨우 집 앞만 산책할 뿐야.
일주일에 두 번 몸을 고치고 오는 날엔 사거리에서 유턴 한 번이면 너에게 닿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항상 실패해. 난 갈 수 없어.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에너지는 아직 없어.
너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 난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을까?
널 보러 가고 싶어. 너에게 가고 싶어.
보고 싶어.’
휴대폰을 꺼내 메모장에 보내지 못할 편지를 적으며 혼자서 소리 없이 울었다. 그리움에 사무치는 게 이런 기분인 걸까.
그리움은 쌓인다. 그리움이 ‘쌓인다’는 표현은 정말로 오랫동안 누군가를 그리워해 본 이가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그리움은 쌓인다. 켜켜이 쌓여 눈처럼 소복해진다.
아픈지 겨우 1-2년이 되었을 무렵엔 그리움이 크지 않았다. 보고 싶어 할 순 있었지만 그리움이 쌓이진 않았다. 아직 오래 아픈 이가 되지 않았을 때 일이다.
2022년, 아픈 사람으로 사는 것은 벌써 5년째에 접어들었다. 내 몸은 처음 통증이 시작되었던 최악의 시기보단 분명히 나아졌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날이 언제일지는 확신할 수 없다. 내가 언제 누군가를 다시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그리움은 충실히 쌓여왔다. 시간이 쌓일수록 내 인생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은 더 해질 뿐 덜 해지지 않는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집에 돌아와 혼자 ‘그리움만 쌓이네’를 부르며 펑펑 울어버린 그날, 나는 이 그리움이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몸이 나아지고 그리운 이들을 직접 만나기 전까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움이 쌓이고 있었다. 그리운 아이들의 얼굴을 헤아리며 나는 목놓아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