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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Mar 26. 2023

[아내의 진심] 철없는 남편을 다루는 법

이기적인 사랑일까

1. 이기적이라 그랬을까?


  [후유증] 연애를 책으로 배운 결과라는 글을 브런치에 써 올렸다. 


  잠시 피신해야 할까. 아내는 자기 얘기가 올라오면 진저리를 친다. 글이 발행되고 3일 동안 아내는 글에 대해 아무런 얘기를 안 했다. 웬일일까. 매 맞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은 더욱 무서운 법. 다행히 아내는 저기압은 아니었다. 중립이었다.


  일요일 아침. 드립 커피 향이 흔들리는, 식탁 앞에서 내가 살짝 첫 운(韻)을 뗐다.


  "해맑은 수림 씨 얘기에 독자들이 관심 있나 봐."

  "내가 왜 그렇게 말한 것 같애?"

  "응. 그 건."

  "내가 이기적이라서 그랬을까?"

  "아니, 당연한 사람심리잖아." 


  나는 눈을 위로 굴리며 둘러댔다. 아내가 질문하면 나는 항상 허둥댄다. 답을 찾아야 하는데. 정답을 찾아야 하는데. 살아 나와야 하는데. 정신없다. 예전엔 내가 스승이었는데, 2년 전부터 자리가 바뀌었다. 갱년기 속에서 수련을 쌓은 결과인가.



2. 소원을 말해봐


  "정말 자기가, 그런 여자와 살아봤으면 해."

  "어. 그런 거였구나. 가끔씩 하던 말."


  아내는 예쁜 여자와 귀여운 여자 그룹 중 첫 번째 '예쁜 여자' 그룹에 속한다. 내가 모든 걸 다 가지는 것은 욕심인 걸까. 나는 예쁜 + 현숙(賢淑) + 예진(藝眞) = 예쁘고 현명하고 성숙한, 참으로 예술적인 여인을 구했다. 한 마디로 '예쁜 예현(藝賢)'이를. '예쁜 여자' 그룹에 속한 여자를 구한 셈이다. -[하나님] 이런 여자를 보내 주세요 참조-


  한 가지 소원을 말해봐~라는 지니의 목소리에

  "내 소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 이런 말을 해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생각했건만. 실전에서 빼먹고 만 내 소원.


  "'예쁘고' '귀여운' 예현이를 보내 주세요" 이렇게 기도했어야 하는데, '귀여운'을 빼먹은 실수. 양다리를 걸쳤어야 하는데. 바보같이. 소다리가 아닌 양다리. 나에겐 양다리가 필요해.



Image by Simona from Pixabay


3. 철없는 이분법


  아내에게 가끔 말한다.

'오늘 예쁘네' '피부가 하얗고 예뻐'~


  한 번도 '이쁘네'라고 하지 않았다. 국민학교 때 예쁘다가 표준어라고 배웠기 때문에. 나는 고지식하니까. 지식이 높으니까. 그렇지만, 아내에게 '귀엽네'라고 속삭인 기억은 없다. 내 여자분류 뇌지도에는 딱 두 가지 카테고리만 있다. 그것은.


  예쁜 여자 아니면, 귀여운 여인. 그렇다. 이분법이다. 나는 단순하니까. 그렇지만, 예쁜 여자 vs. 안 예쁜 여자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이 건 흑백논리니까. 흑백 논리는 싫어하니까.


  나는 이 세계에서, 예쁜 여자와 귀여운 여자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나는 이렇게 긍정적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아내는 이런 철없는 생각을 모두 알고 있다. 그녀는 여신이다. 남편에 대해서는 전지(全知)하다. 남편은 언제나 그녀의 손안에 있다. 아무리 구름을 타고 광속으로 날아봤자 그녀의 다음 손가락에 부딪히지도 못한다.


  아내는 내 소원을 이뤄주고 싶어 한다. 아내는 요술장이 지니가 되고 싶어 한다. 이미 '아내는 요술장이'처럼 요리도 뚝딱뚝딱 만든다. 차갑고 축축한 채소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로 변신시킨다. 전지 요술장이인 아내는,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전능한 지니가 되려 한다.  



4. 밝은 여자와도 살아 봐

 

  "나랑은 살아봤잖아. 그러니까, 밝은 여자와도 살아봐야지. 진심이야"

  "응. 고마워."

  앗. 또 내 입에서 고마워라니. 아주 죽고 싶다고 뮤지컬 노래를 하는구나.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흔들림이 없다. 자기가 하는 말에 책임을 지겠다는 태도였다.


  "워렌버핏 아내도 다른 여자를 남편에게 소개해줬데."

  "그래?" 버핏은 좋겠네. 누가 욕하겠어. 다들 닮고 싶어 하는 버핏인데.

  "워렌버핏 아내는 이혼해 주고."

  "그럼, 한 몫 잡았겠네. 역시 돈이 중요해."


  건강한 사람들이 고민하는 인생 문제는 두 가지다. 이분법으로 생각해 보면, 돈문제 + 이성문제(여자문제). 점 봐주기도 쉽다. 돈(직장, 승진, 사업, 진학, 꿈) + 이성( 인간관계 )에다가 '건강문제' 플러스알파. 나도 점 컨설팅이나 해 볼까.


  간판은 뭘로 하지? 행복한 철학관. 이건 진부해. 철학상담실. 철학발전소. 철학마을. 철학상담나라. 철학상담천국. 신내림 철학관. 신오름 작두. 상담천국 얼쑤.


  좀 더 버무려보자. <지적대화를 위한 철학발전소>. 빙고. 서빙고. 교양 있게 보인다. 카드 환영~



5. 자 이제부터(이제부터), 큰돈을 벌자(큰돈을 벌자)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뭔 얘기 중이었나. 이혼?


  아직까진 안심이다. 이혼해도 나눠줄 게 거의 없다는 사실. 이게 축복일 줄이야.


  그럼. 돈을 많이 벌어야 할까? 이게 걱정인데. 뭐 걱정할 게 없다. 한 5천억 모은 다음에, 이혼하면서 절반 나눠주고, 또 결혼하면 되니까. 전처를 설득하면 되니까. 재혼해서 다시 5천억 재단을 만들자고. 그렇게 다시 결합하면 되니까. 뭐가 걱정이야. 재혼을 안 해 준다고? 그럼 그냥 동거할 거야.


  아내는 이렇게 내 행복을 원하고 있구나.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아 이제부터 ( 이제부터 )

접시를 깨자. 아니지.

큰돈을 벌자 ( 큰돈을 벌자 )

큰돈 번다고 ( 큰돈 번다고 )

접시가 깨어지나.


  철이 없다는 핑계는 좋은 것 같다. 무슨 생각이든 할 수 있다. 생각의 자유. 나는 자유를 원해.


  이렇게 앞 날을 비관적으로 시뮬레이션해 본다.

  비관 속에 낙관이 있으니까.

  빛은 어둠으로 그리는 거니까.


ps

제 글은 자주 실험 중입니다. 문장 시제에 현재형과 과거형이 범벅이 돼 있습니다.

이 글은 @루시아 @티미 작가님들과 '의식의 흐름' 연마 중에 실습용으로 썼습니다.

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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