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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표심 Oct 21. 2022

4학년, 월요 조회와 허망한 고기

무한사랑은 없다

-월요일 아침 조회


  76년도 남정국민학교 4학년 7반에 미혼인 젊은 이정숙 선생님이 부임했다. 선생님의 머리카락은 목까지만 내려왔고, 드라이로 만진 듯 정리돼 있었다. 선생님은 약간 매부리코에 눈매는 남자처럼 강했다. 군산이 고향이라 소유격 '의'를 '으'라고 발음했다.


  선생님은 반장선거를 하지 않고, 그냥 나를 반장으로 임명해 버렸다. 


  역시나 선생님은 나를 똑똑한 아이로 알고 있어. 맞아 나는 3학년 때도 반장이었거든. 나 같은 애가 반장 하는 것은 당연해. 반장 선거를 했어도 내가 됐을 거야. 착각 속에서 살았다. 


  반장의 주요 임무는 줄 세우기와 '차렷 경례', 조용히 시키기였다. 


  월요일 아침 운동장 조회는 곤혹스러웠다. 선생님은 맨 앞에 그냥 서있고, 나는 우리 반 삐툴빼툴한 두 줄을 곧게 만들어야 했다. '7반, 앞으로 나란히' '바로' 큰 소리를 질렀고 인상도 썼다. 그 시간은 반장 역할을 평가받는 시간 같아서 언제나 가슴이 조여졌다.



-우물쭈물하다가는


  비가 오면, 운동장 조회가 취소됐다. 줄을 섰다가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으면, 그냥 교실로 들어갔다. 조회가 취소되는 날은 숨이 잘 쉬어졌다.


  6월 비가 보슬보슬 오락가락하는 월요일. 나는 운동장 조회가 취소될 거라 생각했다. 다른 반 학생들은 서서히 교실에서 나갔지만, 나는 우리 반 애들에게 조회에 나가라고 하지 않았다. 


  비가 왕창 쏟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커져, 비야 제발 쏟아져 내려라 하다가, 결국 비가 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운동장에 나가도 곧 비를 맞을 것이고 교실로 돌아가란 방송이 나올 거야. 그러면 또 수 천명이 반 별로 차례를 하염없이 기다리다가, 얼기설기 짜인 철제 발판에 신발 흙을 탕탕 털고, 귀찮게 하얗누런 실내화로 갈아 신고 교실로 향해야 하잖아. 


  나가기 귀찮아~ 비 맞는 거 싫어.


  우물쭈물하는 사이, 칠판 오른쪽 위 은박이 붙은 갈색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왔다. 


  "4학년 7반~ 조회에 나오세요"

   아~ 'O' 됐다~ ( 기역니은 순으로 꽝? 똥? 뽕? 뿅? 슛? 엿? ... )  



-손 내밀어


  운동장 조회 후 교탁으로 불려 나갔다. 


  "반장이 뭐하는 놈이야~엉?"


  애들 앞에서 자로 손바닥을 10대 맞았다. 


  착~착~착 

  "손 내밀어" 

  착~착~착 

  "어잉?"

  착~착~착~~~~~~착


  맞을 땐 손바닥에서 열이 났지만 맞고 나면 참을만했다. 지나간 고통은 으레 그렇다.


  선생님은 그래도 나를 인정하고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나를 혼내다니.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건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이 나를 좋아했다가 이젠 안 좋아하는 거야? 마음 변한 거야? 아니 좋아하긴 하는데, 반의 기강을 잡으려고 연기하는 거야? 처음부터 선생님은 나를 안 좋아했던 건가? 아니 먼저 반장으로 뽑은 게 누군데?


  집에선 엄마가 혼내고, 학교에선 선생님이 혼내고. 내가 좋아하거나,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듣는 큰 소리, 혼냄, 야단... 윽. 



-무한사랑은 착각


  혼나면서 혼돈에 빠졌다.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들이 치고받았다. 특히나 내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나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애들 앞에서 손바닥을 맞으니 창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배신감. 나는 무조건, 언제나 사랑받고 있다고 철석(鐵石)같이 믿고 있었는데, 잘못해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거라 생각했는데, 나를 야단치다니. 무한사랑받을 거라는 기대감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무한 사랑은 내가 만들어낸 착각인가. 어느 누구도 100% 사랑만으로 나를 대할 수는 없겠지. 제정신이 조금씩 들었다.


 "나 이제 알아. 혼자된 기분을.

  그건 착각이었어 ♬"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내 눈은 땅이나 먼 곳을 향해 돌아갔다. 


  그날 오후 국어시간. 선생님은 '허망한 고기'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현실에 있을 법한 얘기는 아니었다. 옷이나 머리카락에 살면서 피를 빨아먹는 '이'를 사육해서 팔아먹는 내용이었다. 


-허망한 고기


  이를 어찌나 잘 먹였던지, 개만큼 커졌다. 피를 많이 먹은 이는 온몸이 공처럼 부풀어 있었다. 주인은 이의 목에 줄을 매고 시장에 팔러 갔다.


  시장을 둘러보던 어떤 남자가 물었다.


  "처음 보는 건데, 이게 뭐예요?"

  "허망한 고기예요."

 

  주인은 목줄 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남자는 이백 원을 지불한 후 목줄을 잡았다. 그는 시장 좌판에서 고사리·대파·깻잎·들깨 등을 더 샀다. 뜨끈한 보신탕에 고소한 들깨가루를 넣어 먹을 생각하니 입에 침이 돌았다. 그의 집은 좀 멀고 산 길도 통과해야 했다. 


  그는 허망한 고기를 끌고 갔다. 허망한 고기는 뒤뚱뒤뚱 뒤를 따라왔다. 좌우에 세발씩 총 여섯 발로 어그적 어그적 걸었다. 산길을 가다 좁은 길에서 허망한 고기는 검은 나무 가시에 찔렸다. 가시 끝은 풍선이 닿자마자 빵 터질 것 같이 날카로웠다. 


  허망한 고기의 몸에선 붉은 피가 멈추지 않고 질질 흘렀다. 몸은 바람 빠지듯 스르르 스르르 줄어들었다. 노인들 눈에 보일랑 말랑한 크기로 줄어들었다.


  "어? 어?"


  이야기 속의 '이'는 아무리 크게 키워도 결국 '이'였다. 부풀리고 속이려 했지만 결국 들통나는 이였다. 허망한 이였다.


  선생님은 이야기의 의미를 말해주지 않았다. 애들도 묻지 않았다. 나는 낯설고 처음 듣는 그 이야기를 기억 속에 담아만 두었다. 굳이 이야기에서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냥 선생님 눈만 피하고 있었다.




< 룰라 - 날개 잃은 천사 >


나 이제 알아

혼자된 기분을 그건 착각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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