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은 동그랑땡이다. 동그랑땡을 맛있게 먹으려면 에어프라이어보다는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굽는 것이 훨씬 좋다. 에어프라이어는 육즙을 동그랑땡 안에 가두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가스레인지를 통해 불 조절을 요령껏 해나가다 보면, 동그랑땡은 어느새 먹음직스럽게 익어있다.
가스레인지를 이용해 요리를 하다 보면 기름이 손이나 팔에 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배가 많이 고프면 탁탁 튀는 기름의 뜨거움을 애써 참으면서 조리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은 그렇게 배가 고프지 않았나 보다. 오른쪽 손등에 한 두어 방울 튄 기름에 "앗 뜨거워!"하고 응수했다. 오이를 씻고 있던 아내는 유난이라며 눈을 흘겼지만, 소리라도 질러야지, 내 오른쪽 손등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는가.
동그랑땡을 노릇하게 구워 식탁 위에 놓고, 케첩을 종지에 담아뒀다. 동그랑땡은 케첩에 찍어 먹지 않으면 그 맛이 상당히 반감된다. 단무지 빠진 김밥이나, 새콤함이 없는 비빔면처럼, 케첩은 동그랑땡과 때래야 땔 수 없는 친구이자 동반자다. 그리고 동그랑땡 옆에는 방금 씻어 물기를 머금은 하얀 오이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동그랑땡만으로는, 평온한 어느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 저녁 식사의 균형 잡힌 식단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아내는 나보고 영양사처럼 구는 것이냐고 되묻지만, 어디까지나 맛있는 저녁 식사를 위한 몸부림에 불과하다. 하루종일 '사무실'이라는 적막한 장소에서 기력을 빼앗기는데, 좀 더 인간다운 감성을 충전하는 스위트홈에서 혓바닥이 행복해하고, 뱃가죽이 빵빵해지는 경험이라도 하지 못하면, 너무나 아쉬운 하루가 되지 않을까. 일단 오늘은, 동그랑땡이 그 역할을 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