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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팬의 숲 Apr 13. 2021

코로나 선별진료소 체험기

 타자(他者)로부터 말로만 전해 듣고, 멀리서 눈으로만 봐오던 선별진료소라는 곳을 직접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곳은 생각했던 것만큼 괴기스럽지 않았다. 선별진료소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1년 넘게 운영이 되고 있을 줄이야. 정말 이렇게 우리 가까이 있다는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나를 엄습했다.


 선별진료소라는 위압감이 거센 바람에도 야무지게 한발 한발 내디디던 내 걸음걸이를 휘청휘청, 또 위태위태하게 만들었지만 그곳의 입구에 다다르던 순간 대여섯 사람의 의료진들이 휘청거리던 나를 환하게 맞아줬다. 흰 외양의 선별진료소와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의 조화는 묘하게 어울렸다. 하긴 흰색 페인트를 입은 병원과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이 서로 백의의 천사라는 명칭의 원조라며 오랜 시간을 감내해 온 이유가 있겠지.

     

 반갑게 웃는 의료진이 처음 내게 보인 호의는 손 세정제를 두 번 직접 손에 분사해 준 것, 그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비닐장갑 두 장을 제공해 준 것이다. 넌 이제 깨끗해졌으니 이쪽으로 와도 된다는 의미의 눈짓, 이어지는 의료진의 손짓을 따라 옆으로 옮기니 기침이나 몸이 아픈 다른 증상은 없는지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는 종이를 내미는 이들. 나눠준 종이에 뭔가를 정신없이 적어 내면 그제야 등장하는 빨간약과 우악스러워 보이는 긴 면봉. 면봉을 든 내 손 끝이 아련하게 떨려온다.

      

 드디어 코로나 검사의 궁극의 최종 관문을 앞두고 있다. 두 명의 마지막 보스(Boss)가 이쪽으로 오라며 손을 흔든다. 유리 칸막이 뒤에서 앞으로 내민 두 팔이 요란하지만 엄중하게 흔들린다. 흡사 ‘바이오하자드’라는 게임의 좀비가 떠오르는 움직임이다. 오른쪽과 왼쪽, 왼쪽과 오른쪽 어느 쪽 보스가 조금 더 약할까.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사이 오른쪽 보스가 으르렁댄다. “이쪽으로 오셔서 마스크 내리고 고개 드세요.”

    

 순식간이었다. 내 콧속이 검사하는 의료진의 장창 끝에 끝내 공격당한 것은. 예기치 못한 기습에 당황했지만 뒤이어 찾아온 익숙한 통증은 얼마 전 이비인후과 진료 때 맞보았던 그것과 비슷했다. 먼저 검사받은 직장 선배는 아프다고 호들갑이다.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프다고 말한다. 다년간의 이비인후과 진료가 내 코 속에 식스팩을 선사한 걸까.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선별진료소 검사가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이비인후과 진료를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우량체일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내일 아침까지는 긴장하며 기다려야겠다.

      

 직장동료가 코로나 확진을 받아 생활치료센터로 들어가는 걸 본 이후에는 내가 얼마나 안일하게 살아왔나 생각하게 됐다. 어쩔 수 없이 카페나 음식점을 가는 경우도 많지만 일상 감염의 위험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음을 절감한다. 1년 넘게 선별진료소에서 고생하는 의료진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함께,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는 일상이 정말로 일상이 되어버린 암울한 2021년의 4월이 봄이 유독 잔인함을 느낀다. 마스크 속 누군가의 코 모양과 입 모양이 궁금해지는 삶이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장을 마구 뛰어다니는 일이 정말로 하고 싶은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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