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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터팬의 숲 Apr 14. 2021

그리운 나의 참 스승님

 “아직도 몽당연필을 쓰는 학생이 있네.” 교실 1분단 맨 앞줄의 작고 조용했던 한 아이에게 착하고 겸손하다며, 따뜻한 언어와 부드러운 시선을 전했던 중학교 시절의 담임 선생님이 있었다. 조용했던 그 아이는 선생님의 칭찬과 격려를 한 몸에 받고 수줍은 소년에서 바른 청년, 성실한 사회인으로 자라났고, 지금은 그 시절, 기억 속 선생님을 그리워하고 있다.

 

 단정한 단발머리와 선한 미소를 가진 선생님은 언제나 아름다운 연갈색 스카프를 두르고 교단에 서곤 했다. 여교사임에도 교편을 잡고 교실 정중앙에 서서 학급 아이들을 두루 살피는 모습은 덥수룩한 턱수염의 학년 주 임선생님보다도 위엄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중학교 1학년 영어수업 시간이었다. 전체 1학년 열 개 학급 중 절반의 영어 교육을 책임지고 있었던 선생님은, 담임을 맡았던 우리 학급에는 특히 엄격했다. 예습과 복습을 충실히 하지 않은 아이들은 선생님의 질문세례를 제대로 감당해 낼 수 없었다. 5월의 봄날, 운동장 건너편 벚꽃을 멀거니 바라보던 내게, 선생님은 지난 시간 배웠던 영어 교과서의 본문을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했다. 어제 복습을 해둬서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지만, 교실 여기저기에서 “쟤, 발음이 왜 저래”라며,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굴이 붉어져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런데 그 순간 선생님이 말했다. “잘 읽었어요. 발음이 ‘영국식’이네. 영국식 영어 발음은 미국식 발음보다 투박하지만,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어요. 여러분도 알아두세요.” 선생님의 말씀은 손난로보다 따뜻했으며 부끄러움 많던 내게 큰 용기를 줬다. 학생의 부족함을 칭찬으로 승화시킨 선생님의 멋진 품성이 내 가슴에 잔잔히 울려 퍼졌다. 기분이 좋았던 나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처음으로 휘파람을 불어보려고 입술을 모으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처음 본 중간고사에서 반 석차로 13등을 했다. 그런데 1등도, 2등도 아닌 나를, 선생님이 반 아이들 모두 앞에서 ‘유일하게’ 칭찬했다. “항상 성실한 태도로 수업에 임하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네요.” 특별한 칭찬에 질투 어린 시선을 보이는 아이도 있었지만, 이어진 기말고사 결과는 이런 아이조차 나를 인정하기에 충분했다. 반에서 2등을 한 것이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자부심이 나를 덮쳐왔고 그때의 경험으로 내 안에 ‘성공 DNA’를 새길 수 있었다. 선생님이 조용해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수면 밑에 머물러 있던 한 아이의 삶의 방향을 자신만의 올바른 지도법으로 바로 세워 준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1학년 때 그 담임 선생님은 2학년 때도 나의 담임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은 2년의 기간 동안 나를 잘 이끌어주셨으며, “성실한 삶의 태도는 나중에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너에게 큰 힘이 될 거야.”라는 내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가치관을 심어주었다.

 

 스승의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오늘,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고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준 중학교 담임 선생님이 떠올랐다. 고등학교에 가고 대학과 대학원에서도 공부했지만 어디서도 이 선생님과 같은 분을 만날 수 없었다. 너무 어려서였겠지만, 그 시절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일이 여태껏 후회된다. 


 이 글을 누군가 읽는다면 나는 그들에게 조언하고 싶다. 학교에서든, 회사에서든, 좋은 스승이 있다면 그 스승과 만남의 기회가 다하기 전에 감사한 마음을 반드시 표현해야 한다고 말이다. 다가오는 올해 스승의 날에는 그리운 나의 참 스승님을 온전히 추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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