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이성과 감성의 서로 다른 차원 사이를 오가며 나는 어떤 쪽에 가까운 사람인지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이 더러 있다. 내 경우는 회사 선배가 아내에게 업무와 관련된 지시를 내리는 경우이며, 그것을 가까운 자리에서 듣게 될 때이다. 선배의 그 지시가 전혀 부당하지 않았고 ‘정의’와 가장 비슷한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남편이라는 이유로 사심을 가득 담아 그 선배가 미워 보이곤 한다. 직장동료이자 남편인 나는 그 정도의 자격이 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수준의 ‘미움의 정도’를 다른 동료들도 공감할 수 있느냐이다. 공감할 수 있다면 이성, 나 혼자만의 세계에서 부풀려 생각하는 수준이라면 감성이 아닐까.
오늘도 아내에게 업무에 필요해 보이는 지시를 한 우리 부서장의 말이 귓가에 계속 맴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굳이 아내를 불러 업무 이야기를 꼭 해야 했었나. 30분쯤 더 지나서 소화도 시키고 화장실도 좀 다녀온 이후에 업무를 받았으면 아내도 좋았을 텐데. 그 일이 그렇게 긴박감을 요하는 일도 아닌데 말이지. 비뚤어질 테다. 비뚤어진 나는 잘못되고 부당한 무엇인가를 잡아낼 테다. 나는 어렵게, 어렵게 아까 있었던 아내와 부서장이 등장하는 ‘오후 1시’라는 제목의 그림을 물리치고 이성의 영역을 붙잡는다.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자. 다음 주에 이틀이나 연속해서 휴가를 내려면 완벽에 가깝게 일 처리를 해야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그러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내 못 말리는 감성의 영역. 가만있어보자. 아내는 비슷한 경우가 발생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나는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직장에서 마음속이지만 이 정도로 아내를 생각하는데, 아내는 내가 생각하는 수위의 반 정도 수준은 될까. 워낙에 모범생 같고 얼음 공주 같은 성격이라지만 나를 위해 상상의 실타래를 풀어본 경험이 있을까. 이런, 너무 감성에 치우쳤다. 빠져나오자.
내 대학시절의 어느 친구는 나보고 ‘지극히 이성적인 인간’이라고 비아냥대곤 했다. 앞뒤 거두절미해서 그렇지 사실 이 발언의 앞과 뒤에는 ‘넌 공무원 같은 일이 어울리고 살짝 꽉 막힌 사람’이라는 대화가 생략되어있다. 그때의 나는 친구의 이런 말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공무원? 공무원이 요즘 얼마나 되기 힘든데 저런 말은 하는 거냐. 공무원도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 공무원이 비효율의 전형이라지만 나는 공무원이 주는 상징이 나쁘지 않다는 따위의 심상들 말이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 그 친구가 거의 예언자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음에 감탄하고, 내 성격을 제대로 꿰뚫어 본 진정한 친구였음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물론 현재 나는, 공무원은 아니지만 공무원보다 더 답답한 조직에 근무하고 있고, 그 친구와는 몇 년째 연락을 하고 있지 않지만 말이다.
사실 ‘이성적인 인간’, ‘이성의 영역’은 답답하고 무엇인가 꽁한 느낌이 들지만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성적이라는 말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나도 그랬고, 그렇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너무 이성적인 사람으로 보이면, 주변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 “저 사람은 이성적이니깐 합리적으로 생각할 거야, 견뎌내겠지 저 친구는 똑똑하잖아.” 반면에 감성적인 사람에게는 “잘 한번 생각해봐, 내가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하겠어?” 한 단계 위의 사람처럼 보다 조심스럽게, 설득하고 이해시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난 이성적이지만, 감성적인 면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비록 상상 속에서만 헐크처럼 변하고 상상 속에서만 책상을 걷어차며, 상상 속에서만 아내를 힘들게 하는 회사의 모든 사물과 사람을 멀리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상상할 수 없으면 이뤄질 수도 없는 것. 반대로 상상하게 되면, 나는 상상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내가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에서 지극히 감성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도 있다. 이성과 감성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아내와 모나지 않으면서 실속 있는 회사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서 나는 어떤 차원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까.
‘반인반수’나 ‘지킬박사와 하이드’, ‘늑대인간’처럼 변할 수 있는 육체를 넘어서, 다차원적이지만 균형 잡힌 내 정신이 나를 지키고 내 아내를 보살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