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크 부부'의 고상하며 조금은 사치스러운 취미 생활

by 피터팬의 숲

오후 6시는 그날 하루 벌어진 직장 생활의 고단함에 안녕을 고하고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시간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붐비는 지옥철을 뚫고 집에 돌아와서 뜨거운 샤워 후에 소파에 안착하면 나에게 남는 자유시간은 고작 서너 시간에 불과하다. 아이가 있었다면 그 서너 시간도 소중한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했겠지만, 아이를 가지지 않고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나는 아내와 각자의 자유시간을 탐닉하기로 한다.


‘닌텐도 스위치’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라는 콘솔게임의 쌍두마차를 좌청룡 우백호처럼 거느리고 저장된 게임을 불러와 뿅뿅거리는 나와, 북클럽을 통해 정기구독 중인 책을 펼치는 아내의 컬래버레이션. 동네 서점에서 고른 책 리뷰를 작성하는 나와, 유튜브 먹방 채널을 열어 낄낄거리는 아내의 허비(hobby) 스위칭. 우리는 잠시 짬을 내어 몬스테라와 문샤인, 선인장에 물을 주고 오늘 있었던 기억하고 싶은 일에 대해 다이어리에 스티커를 붙이고 뭔가를 기록하는 여유를 부리기도 한다.


그러다가, 반려식물을 돌보다가, 먹을 만한 간식이 있나 냉장고 문을 여닫다가, 하고 싶은 일에 다시 열중하다, 설거지통에 쌓인 내 손길을 기다리는 접시와 밥그릇들을 보면 살짝 우울하기도 하지만, 작년 여름 설치한 최신식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을 쐬며 더위와 걱정거리를 마음 뒤편으로 날려버리면 직장에 입사하기 전에 느꼈던 뜨거웠던 자기애를 상기하게 된다.


그런데, 나와 아내가 보내는 이런 시간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보면 한산하고 고상해 보이며, 조금은 사치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를 기르는 부모는 사무실에서 격무에 시달리다가도 집에 와서도 소위 ‘2차전’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낮 동안 이미 노곤해진 몸과 정신을 다잡아 사랑과 헌신으로 아이에게 쏟아붓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친 자신의 마음을 토닥일 여유 대신에, 부모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를 등을 토닥이는 일은 위대하다. 하지만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남는 시간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일 또한 위대하다. 누구나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보낼 권리와 자유가 있고, 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선택을 한 대신 조금 더 편하게 또는 사치스럽게 시간을 보낼 권한도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정성스럽게 아이를 키우면 그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으로 보답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사랑으로 대할 대상이 없다. 나와 아내는 어떤 대상에게 사랑을 전하기 전에, 스스로를 더욱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악다구니 쓰지 않고 몇 시간이라도 미소 지으며 한가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영화감상과 먹방 투어, 뜬금없는 동네 산책, LP 음악과 함께하는 커피 한 모금, 자격증 공부, 미래 계획까지. 평일 밤의 나른함이 주말에 해야 할 많은 to-do 리스트로 이어진다.


아이 없는 부부가 가질 수 있는 슬기로운 취미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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