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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승 Apr 03. 2021

어른이 된다는 것

커피×사람 02 _골목 안 커피집

커피×사람 02


눈에 선하다는 말, 골목길은 또 다른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어린아이였을 때 골목은 왜 그리도 넓어 보였는지, 길 끝까지 뛰었을 때 왜 그리도 숨이 목에 차 헉헉댔는지. 하지만 몸이 성장을 멈출 때쯤이면 골목은 초라해진다. 골목과 함께했던 어린 날의 여러 기억이 느닷없이 빛바랜다. 담벼락과 전봇대는 왜 그리도 낡아버리는지…. 가방을 던지고 축구를 할 정도로 넓었던 골목은 지나가는 자동차를 피해 몸을 비키면 담벼락에 어깨가 닿을 정도로 좁아져버린다.


기억 속에 자리한 골목은 이미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세상에 없는 기억, 추억으로 자리 잡는다. 그 골목, 그 길에 와서야 내가 커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 다시는 콧물을 날리며 고무 축구공을 쫓아 뛸 수 없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머리에 떠오를 때 깨닫는다. 아이들은 뭔가를 알게 되지만, 어른은 깨닫는다. 피동과 능동, 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기준일 것이다. 이때부터는 더 이상 꿈속에 어린 나는 보이지 않는다. 이전까지는 기억이었던 어린 날의 골목길은 이때부터 꿈속에서조차 재현할 수 없는 추억이 된다.



골목은 언제나


길은 잔인하다. 고속도로, 왕복  차선의 큰길뿐만 아니라 좁은 골목길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좁고 구불구불한 길일지라도  끝은 새로운 곳을 향해 있다. 막다른 골목도  너머를 동경한다. 목적 없이 걷는 발걸음조차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방향이 생기고 목적이 정해진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몸의 피로가 쌓이지 않으면 절대로 느려지지 않는 속도.  빠르기를 골목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골목의 어떤 모습이다. 골목길은 항상 낡아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새로움으로 끊임없이 바뀌어간다. 어느 날 광화문 뒷골목을 걷다가 나무 전봇대가 베어진 자리를 본 적이 있다. 바로 옆에는 시멘트 전봇대가 무심히 서 있고 노란색 선이 길섶을 표시한 자리. 옛날과 지금의 전봇대를 피해 간 휘어진 곡선은 골목이 간직한 여유로 느껴졌다. 내 눈은 그 휘어진 노란 선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하지만 베어진 나무 전봇대는 이미 기능을 잃고 옛날의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한때 문명의 첨단이었을, 타르를 짙게 바른 나무 전봇대의 밑동. 지금은 시멘트 전봇대가  옆에 당당히  있지만 시간은 이마저도 낡은 것으로 만들 뿐이다. 골목은 끊임없이 새로워지는데  눈은 언제나 옛날의 골목에 머물러 있다.


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사라진 광화문 네거리, 동아일보 맞은편의 국제빌딩. 그 자리에는 지금 동화면세점이 자리하고 있다. 국제다방도 국제극장도 국제빌딩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사라진 것은 빌딩뿐만이 아니다. ‘국제화’란 말은 아직 사어가 되지는 않았지만 예스럽다. 당국의 허락을 받아 해외여행을 하던 시절의 말이니 아득하고 고풍스럽기만 하다.


그 자리를 ‘세계화’가 자리 잡았다. 그 말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시멘트 전봇대처럼 굳건히 사람들의 언어 속에 박혀 있다. ‘인터내셔널’의 자리에 ‘글로벌’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아니 쓰였다. ‘신작로(新作路)’라는 말이 이 모든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새[新]로 만든 길인데, 이를 듣는 지금의 귀는, ‘참 낡은 말’이라고 받아들인다.


‘새로운 낡음’이나 ‘낡은 새로움’이 세상을 이루면서 하늘 아래 새것은 없고, 세상은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섞인다. 코로나가 만든 팬데믹의 세계는 글로벌이란 말을 또 곰삭힌다. 햇살 눈부신 골목 구석에서 추억은 방울방울 떠오르지만, 길은 한없이 새로운 곳으로 생각을 잇고, 말을 덧쌓는다. 하지만 골목은 골목일 때, 아름답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좁은 길일 뿐이다.



골목 안 커피집


광화문 근처, 경희궁길의 골목과, 흔히 서촌으로 불리는 경복궁의 왼편, 통인동 일대의 골목 그리고 청와대 뒷산 언덕바지에 있는 부암동 골목을 걷는다. 골목길 산책은 생각을 피어 올린다. 골목이 이제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라 어른들의 산책로가 되었다는 생각. 아이들은 더 이상 골목에서 놀지 않는다. 학원에 허덕이는 아이들이 아니라 해도 그들은 골목을 누비며 지내지 않는다. 아이들이 사라지자 골목 안 구멍가게도 함께 사라졌다.


구멍가게가 있던 자리에 한때 어린아이였던 어른들의 놀이터가 생기기 시작했다. 골목 안 커피집, 어렸을 때 그 어른들이 드나들던 구멍가게를 대신해 길모퉁이나 구석에서 커피 향기를 피어 올린다. 그 어른들이 어렸을 때 ‘뽑기’와 ‘달고나’의 향기를 쫓아 구멍가게에 빠져들었던 것처럼 그 향기는 자못 매혹적이다.


아이들이 사라진 골목에 어른들이 느릿느릿 걷는다. 어쩌면 골목에서 유일하게 낡은 것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새로움으로 조금씩 옷을 갈아입는 골목보다 더 느린 사람들. 골목만 벗어나면 ‘빨리빨리’되는 사람조차 골목에서는 나무 전봇대만큼 낡아 있다. 골목 안 커피집들은 낡은 사람들의 이정표 같은 곳이다. 꼭 어디를 향해 가지는 않지만 거기에 멈춰 서서 여러 갈래로 뻗은 길 끝을 확인하는 그런 이정표.


거기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곳에서, 어릴  침샘을 자극하던 소위 ‘불량식품 매혹되었듯이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쉼표처럼 앉아 있는 사람들. 팬데믹의 마스크도  향기를 막을 수는 없다. 오늘도 커피 볶는 향기는 골목을 싸고돈다. 느닷없이 커버린 아이들이  향기에 사로 잡혀 다시 아이가 된다. 골목은 다시 축구장만큼 넓어지고, 나무 전봇대가 쑥쑥 자라고 꽃을 피우고 잎사귀를 돋운다.


#골목 #커피집 #추억 #기억 #구멍가게 #전봇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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