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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규승 Mar 08. 2021

그 다방에 들어서면

커피×사람 01 _쓴맛의 ‘끝판왕’

커피×사람 01 



그때까지 내 이름이 그렇게 낯설게 들린 적은 없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잠깐 동안 짜릿함 때문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했다. 낯익은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이 부를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각. 나를 부르는 소리는 귀를 통하지 않고 온몸의 신경을 통해 내 머리에 전달되는 듯했다.


“손님 중에 ○○○ 씨, 계세요?”


내 이름이다, 부연 담배 연기를 뚫고 들려온 것은. 콧소리가 약간 섞인 말랑살랑한 목소리, 분명 나를 찾고 있다. 아무런 반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그 목소리가 다시 찾는다. 순간, 나는 손을 번쩍 든다. 그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다방 안의 시선이 모두 내게 몰린다. 그리고 이어지는 웃음. 얼굴이 발개진다.


검은색 송수화기를 양손으로 받쳐 든 여자는 입가에 웃음을 살짝 얹고 내게 오라고 고갯짓을 한다. 나는 그 여자가 찾기라도 한 것처럼 부끄럼을 몸에 싣고 전화가 있는 곳으로 간다. 걸음은 서툴고 시선은 무겁다. 겨우 도착한 다방 카운터. 건네받은 송수화기의 온기를 느끼며 나는 전화를 받는다.



국제다방


아버지다. 늦는다, 기다리라는 말이 들려온다. 익숙한 목소리에 긴장이 조금 풀린다. 수화기를 여자에게 건네주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나는 엉거주춤 앉아 있다. 여자는 전화를 끊지 않고 그새 아버지와 통화를 한다. 잠시 뒤 여자가 내게 다가온다. 내가 앉은 테이블 위에 우유 한 잔을 내려놓는다. 이것 마시면서 기다리면 아버지가 곧 오실 거라는 얘기와 함께. 여자의 말은 이미 존대어가 아니다. 한복 자락의 끝을 찰랑이며 여자는 돌아선다. 그때 내 입에서 왜 이 말이 비어져 나왔는지 모른다.


“저기요, 아줌, 마. 저도 커피….”


다방 안의 사람들 대부분이 마시고 있는 커피를 주문했을 뿐인데, 여자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돌아본다. 나는 그 시선을 슬며시 비끼며 손가락으로 천천히 옆 테이블 위의 커피를 가리킨다. 여자는 내게 얼굴을 숙여 “누가 아줌마야?” 하면서 목소리를 살짝 올린다. 그렇다고 아가씨라고 부를 수는 없는데…. 여자가 나이 들어서가 아니라 그러기엔, 내 나이가 너무 어리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커피를 가리킨 손가락에 힘을 준다. 여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알았다는 듯이 빙긋, 웃는다.


커피가 내 앞에 놓여 있다. 잔 속 검은 액체의 표면에 내 모습이 떠 있다. 까까머리 1학년 중학생. 조심스럽게 커피 잔에 입을 댄다. 한 모금, 목으로 넘긴다. 한약보다 쓴 커피는 내 양 미간을 구긴다. 이런 모습을 누가 볼까봐 짐짓, 여유 있는 표정을 짓는다. 다리미로 얼굴을 펴는 것처럼 눈 아래 살이 살짝 떨린다.


다시 한 모금을 입에 담는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좀 더 많다. 아까와는 달리 천천히, 조금씩 목으로 넘긴다. 쓴맛이 입속에 꽉 찬다. 매운 고추보다 더 자극적인 맛. 두 번째 마신 한 모금은 참을 만하다. 점점 다방이라는 공간에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한다. 내 등은 이미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있다. 아버지가 왔을 때 나는 이미 어른들처럼 다방의 손님이 돼 있었다.



입속의 검은 맛


그때 아버지가 왜 나를 다방으로 불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어머니의 심부름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전해지는 물건을 가져갔거나 가져왔을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침에 가져가지 못한 중요한 서류일 수도 있고, 어머니에게 전해져야 할 급한 돈일 수도 있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그 다방이 광화문 네거리 국제극장이 있던 빌딩 지하의 국제다방이었다는 것. 그 빌딩 앞에서 바라본 이순신 동상이 참 멋대가리 없이 어두웠다. 그 실루엣 뒤로 당시 정부종합청사였던 일제 총독부 건물이 있었다. 국제극장도 구 일제총독부 건물도 사라지고 없다. 국제극장 자리에는 동화면세점 건물이 솟아 있다.


그 모든 건물의 실루엣이 아련할 만큼 그날의 커피 맛은 잊히지 않는다. 입속을 가득 채운 검은 맛은 지금도 온전히 느껴진다. 그때를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입안이 부푼다. 아직까지 그때의 검은 맛처럼 충만한 ‘풀 바디(full body)’의 커피를 마셔본 적이 없다. 지극한 쓴맛.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쓴맛의 ‘끝판왕’.


그 맛에 가까운 커피를, 내가 마셔본 커피 중에서 고른다면 터키식 커피가 아닐까 싶다. 밀가루처럼 미세하게 분쇄한 커피를 이브리크에 넣고 끓이다가 설탕을 넣어 다시 끓여내는, 쓰고 단맛의 끈적임을 즐기는 커피. 터키식 커피는 음료가 아니라 차라리 죽에 가깝다. 터키식 커피에 설탕을 넣지 않고 마신다면 아마 기억 저 끝에 자리한 검은 맛에 다가가지 않을까. 물론 그때의 커피를 지금 마신다면 기억에 담긴 그 맛은 아닐 것이다. 인스턴트커피(남대문 도깨비시장에서 흘러나온 소위 미제, 폴저스커피이거나 1970년부터 생산된 한국산 맥스웰 하우스커피?)였을 뿐이니까.


하지만 맛은 기억을 더할수록 짙어지는가 보다. 그때의 장면은 점점 흐려지는데 검은 맛은 자꾸 농도를 더해간다. 기억의 왜곡은 바라던 것을 마치 겪은 것처럼 만들지만, 감각의 왜곡은 덧칠을 하는 것처럼 짙어져 그 이상을 느낄 수 없을 정도의 절대치까지 나아간다. 가끔 그 왜곡된 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현실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이기에 그리움은 짙어가기만 할뿐이다.


#최규승 #국제다방 #이브리크 #폴저스커피 #맥스웰하우스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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