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 영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운 Sep 17. 2023

[책] 공터에서

김훈


책을 살 때 뒷면에 어떤 이야기가 적혀 있는지 습관적으로 보게 된다. 작가가 의도하는 내용이 담긴 문구가 들어있기도 하고, 좋은 책일수록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그곳에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답을 알려준 것 같지만, 수학 문제의 답처럼 풀이과정을 봐야 이해가 가는 것이다. 답만 외워서는 소용없는 수학문제처럼 말이다. 그 답의 이유를 찾고 싶을 때, 책을 집어 들게 되는 것 같다. 김훈 작가는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라고 책의 뒷 공터에서 외치고 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알 것 같지만 읽고 싶었다. 이 말속엔 등장인물 모두가 들어있다. 마동수 마남수 하춘파 이도순 마장세 마차시 박상희 오장춘…. 다 같이 아우성치고 있는 것 같다. 책의 표지는 크라프트지로 마감했는데 그 색과 질감이 공터의 땅 같다.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아버지와 그 아들들의 비애로운 삶!

이 작은 소설은 내 마음의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다.

나의 등장인물들은 늘 영웅적이지 못하다. 그들은 머뭇거리고, 두리번거리고, 죄 없이 쫓겨 다닌다. 나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는 이 말에 난 '기표'가 떠올랐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


이 말을 편지에 남기고 기표는 떠났다.  의식의 세계를 온전히 버티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의 세상이 만들어놓은 굴레에 순응하면서 살던지, 아니면 올바른 의식의 세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싸우면서 버터야 하는데, 한 개인이 그 시대의 무게마저 버티고 투쟁하기엔 나약하기 그지없다. 할 수 있는 건 도망치는 것 아니면 의식의 밖으로 정신을 내 몰아서 미치는 것뿐일 수도 있다. 기표는 그 권력에 맞서 보려 했지만, 창살에 갇혀 짖어대는 식용견의 운명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무서워서 더 이상 짖을 힘도 없이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떠난다. 탈출한다. 마치 기표가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떠난 이후의 삶이 마장세처럼 느껴진다. 기표도 미크로네시아로 갔을까?


작가 김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 김훈은 ‘공터에서’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마차세를 닮아 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이후 지금까지가 작가 인생의 최대의 난세라고 생각하는 김훈에게는 그래도 버티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을 마차세와 닮아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김훈은 의식의 세계를 넘어 탈출을 시도하고 있고, 미치지 않고 의식 밖의 세계로 소설을 빌려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마장세의 미크로네시아는 김훈에게는 소설일 것이다. 세상과의 연결고리, 의식의 세계 즉 제도권에 편승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 삶의 운명 속으로 김훈은 다시 돌아오지만, 그는 매번 또다시 탈출을 시도한다.


아버지, 아들,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이라는 키워드가 책을 펼치도록 만들었다. ‘깊은 바닥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을 엮은 글’이라고 김훈은 말한다. 정체성의 혼란으로 고통을 느끼고, 뿌리를 찾아서 나의 히스토리를 정리하고 싶어 하는 입양아의 심리와 닮아있다. 나를 버린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화를 내고자 만나려 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워서 함께 살고 싶어서 만나려고 하는 것도 아니더라. 그저 ‘끈덕지게 마음속 깊은 곳에 들러붙어 있는 기억과 인상의 파편들의 퍼즐을 맞추어 지금의 내가 어떤 풀이 과정으로 나온 답인지를 이해하고 싶을 뿐이더라.


김훈은 다 쓰지 못했다고 했다. 많은 양을 덜어내기도 했다. 모조리 깨끗하게 긁어내지 못하고 큰 덩어리의 귀지 만을 걷어낸 것이다. 그나마 답답함과 가려움을 조금 덜어낸 느낌이다. 아직도 김훈에겐 너무 깊어서 건드리지 못한 귀딱지가 있을 것이고, 피부처럼 들러붙어 있어서 떼어내면 심하게 염증이 생길 수도 있는 그런 찌꺼기들을 몇 차례 시도하다가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귀지도 너무 심하게 모조리 긁어내면 탈이 나는 것처럼 지금이 적당히 잘 긁어낸 정도일 것이다.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어 적어 내려간 느낌이다. 인터뷰에서 사회자는 희망의 메시지에 대해 묻는다. 얼마 담아내지 못했다고 그는 말한다. 젊은이들에게 저항하면서 살아야 할 것을 말하면서 버티라고 말한다. 분명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쓴 소설은 아니다. 작가 자신의 탈출구로써 정말로 끈덕지게 들러붙어 있는 굴레의 끊을 조금 느슨하게라도 만들고 싶어서 쓴 글이다. 달아날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저항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희망을 말한다면 작가는 버티라고 조언한다. 버티는 것이 희망일 수 있는 것이다. 버티다 보면 누니도 만나는 것 아니겠는가. 작가 자신도 그렇게 버티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런 정보 없이 책의 뒷면만을 보고 충동구매해서 읽고 난 후, 난 의문에 사로잡혔다. 마장세의 사업에 문제가 생기고 경찰에 체포되고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 퍼져가는데 책은 거의 끝나갔다. 벌써 마무리되는 건가? 등장인물들이 모두 급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린다도 그냥 드라마에서 배우의 개인사정으로 출연할 수 없어 급하게 눈 맞아서 도피한 것으로 처리한 느낌이고, 오장춘도 그냥 자살로 마무리된다. 이도순의 유품 속 군복은 뭐지?라는 생각에 혼란스럽다가, 마차세의 딸 누니를 보고, 마누라 박상희를 보고 책을 읽는 나도 마차세가 되어 일상으로 돌아오는 어쩔 수 없는 경험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해결되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의문의 결말이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우리들의 탈출할 수 없는 현실이 삶인 거고, 하루하루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전쟁 같은 삶 속에서도, 잔인한 뉴스가 속보를 전하는 세상 속에서도, “어쩜 좋아~ 휴~” 한마디 하고 채널을 돌리고 다시 웃고, 일상 속에서 그냥 살아간다. 엄청난 일을 겪은 것 같지만 마차세도 그냥 다시 삶을 이어가기 위해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또 다른 일상으로 돌아온다. 누니도, 박상희도, 희망도, 혈연의 연결고리도, 그냥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의 일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는 처음엔 ‘공터에서’라는 제목처럼 공터에 버려진 느낌이 들었고, 내가 어디를 대충 읽었나? 혹시 챕터를 빼먹었나? 그냥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식의 허무함에 멍했다. 하지만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공터에 홀로 서있는 여기가 바로 내가 있는 곳이고,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섭지만, 혼자서 외롭지만, 달아날 수 없는 곳이 여기인 것이다.


표면적으론 도전적으로 삶을 일구어 가는 것처럼 보이는 마장세와 오장춘은 두려움에 떠밀려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르며, 상대적으로 평온할 수도 있는 일상의 공터로는 돌아오지 못한다. 그 두려움이 마음의 공터를 찾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댄 것인지도…하춘파와는 달리 지극히 차분함을 유지하고 어느 곳에도 연루되지 않고 삶을 이어온 아버지 마동수처럼, 마차 세는 마장세와 오장춘의 삶과 달리 오히려 지극히 냉철하다. 그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도 않는다. 세상에 저항하지도 않는다.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어쩔 수 없음. 달아날 수 없음. 에 대해 차갑게 적응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보편적인 우리들의 모습이고 김훈은 자기와 닮아 있다고 한다. 어쩌면 두렵기에 달아나고 일을 저지르고 삶을 망치고 있는 것이 하춘파, 마장세, 오장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훈은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저항에 존경을 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소설 쓰기가 하춘파, 마장세, 오장춘이 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과정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달아날 수 없는 무서운 세상에서 소설을 통해 그는 탈출을 감행하고, 마차세가 미크로네시아로 출장 가듯 그도 일탈한다.




대통령의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에서 그는 '공터에서'라는 제목이 떠올랐다고 했다. 제도권의 문제에 저항한다. 의식의 세계에서 어쩔 수 없음에 체념하지 않고 저항하기 위해 모인다. 하지만 우리는 일상을 저버릴 수 없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공터'만 남는다. 세상의 힘에 억눌려 두려움에 회피하는 일탈보다는 적극적인 저항의 외침과 다시 일상으로 의연히 돌아올 용기가 있을 때 난세를 극복할 힘이 나오는 것일 것이다.




공터에서 / 김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