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 #어항 #딸딸이공중전화기
'나노바나나'가 사진찍어주었어요
조각모음이란 제목을 매거진에 달아놓았어요. 내 컴퓨터에서 조각모음을 하면 컴퓨터가 기분이 좀 나아진다고 느꼈어요. 내 전문 분야의 글을 쓸 때도 그렇고, 사진 촬영을 할 때도 그렇고, 누군가와 어쩔 수 없는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도 그렇고, 뿌옇게 안개가 낀 듯한 느낌이 들어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데 늘 과거 같은 느낌이 매순간 찾아와요. 잘 안보이니 불안한 마음은 늘 품고 사는 것 같아요. 버섯이 불안함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얘기에 먹어보려고도 했어요. (아~ 버섯에 대한 트라우마도 언젠가 조각모음 해야겠어요.) 나도 내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보면 지금의 나를 좀 더 잘 이해하고 다독여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깊은 곳으로 조각들이 숨어버리기 전에 하나씩 하나씩 모아보려고 해요.
기차
많이 어렸을 때의 기억임에 분명해요. 엄마랑 아빠랑 함께 가는 기차여행이었어요. 기차를 처음 타 봤어요. 나에게는 여행이었죠. 밤기차는 매우 느렸어요. 놀이공원 기차를 타는 기분이 드는 순간이 한번 있었어요. 기차가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았고, 끼~~~~익...끼~~~~익 하면서 기차 바퀴가 억지로 레일 위를 버티며 굽은 철길을 통과하고 있었어요. 느린 기차였는데 거의 기어가는 수준이었어요. 밤기차여서 사람들은 거의 없었죠. 그래서 소리는 더 크게 귀를 자극했어요. 귀를 막아야할 정도였어요.
자리를 돌려서 4명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앉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는데. 엄마랑 나랑 함께 앉고, 아빠는 기차가 가는 반대 방향을 향해서 내 앞에 앉아계셨어요. 베이지색의 점퍼와 짙은색 양복바지를 입고 계셨어요. 아빠는 늘 점퍼의 지퍼를 열고 입는 법이 없었어요. 항공점퍼 같은 스타일의 옷인데 답답해보였어요. 지퍼를 끝까지 올리지 않은건 그나마 다행인데 넥타이때문인듯했어요. 밤기차인데도 아빠는 선글라스를 끼고 계셨어요. 왜곡된 기억일지도 몰라요. 어린시절 아빠는 늘 사각 선글라스와 사파리 가죽 점퍼를 입고 계신 이미지로 기억해요. 책 속에 간첩으로 나오는 사람과 닮아 있었어요. 그래서 아빠라고 해도 나는 늘 감시했어요. '아빠가 아닐수도 있어, 간첩이라면 아빠라도 꼭 신고해야해' 라고 늘 다짐했었죠. 반공교육이 철저했던 시기였네요.
"기차 처음 타보지?" 라고 아빠가 물어보셨어요. 아빠라는 느낌보다는 엄마랑 잘 알고 지내는 아저씨가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아빠~'하고 아빠한테 달려가서 안겨본 기억은 없어요. 엄마와도 그렇긴 해요. 혹시라도 이 기억의 조각이 너무 깊숙하게 숨어버려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떠오르지가 않아요.
여행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고, 엄마 아빠랑 함께 가는 밤기차 여행인데 왜? 불안한 기분으로 기억되는지 모르겠어요. 기차에 대한 기억의 조각은 이게 전부인듯해요. 그 기차의 목적지가 '함백'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기억의 근거는 잘 모르겠어요. 여행으로 느끼기엔 엄마 아빠의 옷차림이 너무 사무적이었어요. 기차가 굉장히 느렸다는 것과 그래서 더욱더 크게 느껴졌던 덜컹거림을 하나 둘 숫자로 세어보았어요. 근데 창밖을 멀리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나네요. 보통은 아이들이 창문에 붙어 앉는데, 엄마가 창측 자리에 앉고 나는 복도자리에 앉았어요. 자리를 바꾸어 달라고 요청할 줄 아는 그런 아이가 아니었어요. 멀리 넘겨보면 그만이었어요. 그래서 내 옆에도 그 앞에도 사람이 없었다는걸 기억해요. 아빠의 바지가 기억나는 것도 내 시선은 멀리 창밖을 넘겨다 보는 것 말고는 아빠 무릎을 보면서 덜컹거림을 셈하고 있었으니까요.
다방
다음 기억은 '다방'이에요. 함백 읍내에 도착했나봐요. 굉장히 좁고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가면 나오는 그 당시에 느끼기에도 구닥다리 다방이었어요. 어린 나에겐 좁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게 기억되는 건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옆이 아닌 뒤에서 따라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문에 달린 종소리도 기억나요. 듣기 싫었어요. 지금도 소리에 예민한 편인데 그때부터 그랬나봐요. '어서오세요'라는 쟁반을 들고 있는 아줌마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어요. 코 맹맹이 소리에 친철과 불친절이 섞어있었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싫어서 눈이 마주쳣을 때 고개를 바닥에 떨구었어요. 아직도 기억이 나요. 바닥은 요즘과 다른 형태의 마감이었는데, 금색 줄이 정방형으로 되어 있어서 비싼 '금'을 바닥에도 사용하나? 하는 생각도 했던 기억이 나요. 키가 작은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올려다 보았기 때문인지 어른들의 시선은 위협적이었고, 그냥 싫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사진을 찍을 때도, 아이들과 말 할 때도 무릎을 꿇고 해요.
엄마 아빠는 어떤 아저씨를 만났어요. 담배 연기는 자옥했고, 나는 다방안을 돌아다녔어요. 옛날 다방엔 항상 작은 수족관이 있었어요. 어항이라고 하기엔 좀 규모가 있긴하죠. 물고기 구경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다방의 가운데 기둥에 전화기가 있었는데, 속칭 딸딸이전화기라고 하는 공중전화였어요. 전화기 옆에 돌릴수 있는 레버가 있었는데 수화기를 들고 레버를 여러번 돌리면 '드르륵' '드르륵' 하는 소리가 났어요. 어떤 아줌마가 전화를 받아서 그냥 끊어버렸어요. 엄마가 알려주었어요. 교환원이래요.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전화해도 된다고 했던 것 같아요. 비싸지 않았을까요? 아마 어른들의 이야기가 길어질 모양이었는지, 사촌에게 전화해보라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뭐~ 전화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전화기는 처음 사용해봤어요.
지금도 기차를 타면 늘 '함백갈 때의 기차여행'이 생각나요. 다방에서 공중전화가 거의 마지막 기억이에요. 지금생각하면 탄광촌이었는지 황량한 느낌의 어느 곳인가에 갔던 기억도 있지만, 이 기억에서는 #밤기차 #다방 #딸딸이공중전화기 이렇게 3가지를 조각모음합니다. 그러고보니 조각모음에 #엄마 #아빠를 포함하기엔 낯선느낌이 드네요. 글을 쓰면서도 계속 떠올려 보지만 몇살때였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