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커피여정

신비의 명약으로 탄생한 커피

예멘 Yemen | 커피의 탄생

by 비오
신비의 명약으로 탄생한 커피 내용 요약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커피는 홍해를 건너 예멘에서 새롭게 ‘탄생’한다. 자연에서 자생하던 커피를 사람의 손으로 경작하기 시작했고 재배법이 고안되었기 때문이다.

예멘의 고도 사나 옆에 치솟은 나비수아이브산( جبل النبي شعيب Jabal an Nabi Shu’ayb | 예멘에서 가장 높은 3760m의 정상을 가지고 있는 산)이 커피의 경작이 시작된 곳이다. 커피는 이 곳에서 높은 곳의 환경에 맞게 알차고 튼실하게 자라났고 이 때 만들어진 재배법은 현재까지 표준이 되고 있다. 재배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밭을 개간하고, 충분한 관개시설을 확보한다. 여기까지는 다른 농작물과 비슷하다 하지만 커피는 너무 강한 햇빛과 해충으로 부터 피해를 막기위해 주변에 키 큰 나무를 심어야 했다. 그늘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림1] 예맨에서 퍼져가는 커피


커피재배 방법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고 타국인이 커피 농장을 방문하는 일은 엄격히 금했다. 커피콩은 물에 넣어 끓이거나 열을 가해 발아능력이 없어져야만 수출이 가능했다. 어쩌면 이 때 부터 커피는 구워서 음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멘이 커피경작을 독점해 공급하는 동안 커피 가격은 치솟았고 그들은 커피로 더욱 풍요해졌다. 로마인들에 의해 ‘행복한 아라비아(Arabia Felix)’라고 불렸던 그들은 커피로 더욱 풍요해졌다.

재배된 커피의 교역이 이루어 진 곳은 알모카(al-muckha) 항구이다.

알모카 항구는 이 후 유럽인들에게 모카(Mocha)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고 커피의 애칭이 되었다. 또한 모카항에서 주로 거래되던 에티오피아의 원종에 가까운 커피들은 모두 특이한 향을 갖고 있다. 이르가체프(Yirgachefe)나 모카하라(Mocha Harrar)의 향은 초콜렛 향과 비슷해 모카(Mocha)는 초콜릿을 지칭하는 말이 되기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즐겨 마시는 ‘카페 모카’에 에스프레소 샷과 초콜릿을 섞는 데에는 이런 이야기가 숨어있다.

사실 호데이다(الحديدة)나 그 외의 항구도 모카에 뒤지지 않고, 훨씬 많은 물량을 출하했지만 모카가 대표적인 항구가 된 이유는 모카 항만이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유럽선박이 직접 기항을 허락받아 커피를 매입했기 때문이다.


중동지역에서 최고의 위상을 구가하다.

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건너간 커피는 예맨, 메카, 카이로 등의 중동지역에서는 최고의 위상을 구가하게 된다. 커피가 종교적 제의에 사용되는 성스러운 음료로 위상이 격상되었다. 이유인즉슨 중동지역을 시작으로 아프리카에서 인도까지 퍼져있던 이슬람 신비주의자인 수피들이 그들의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금욕, 금주, 잠들지 않고 기도해야하는 부분과 커피의 효능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림2] Mevlevi dervishes whirling in Pera by Jean-Baptiste van Mour


커피 한 주전자를 마신 뒤에 한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계속 빙글빙글 돌면서 종교적 황홀경에 도달한다.


수피라고 불린 사람들의 등장한 곳은 8세기 말 메소포타미아 지방 바빌론 근처 ‘쿠파’라는 마을이며, ‘수피’라고 불린 것은 흰 양털(수프, صوف ṣūf)로 만든 망토를 몸에 두르고 황야에서 종교적 고행을 수행한데서 비롯되었다, 지금은 이슬람 신비주의자들 모두를 일컫는 통칭이 되었다.

에티오피아 편에서 이야기했던 커피를 최초로 음료화 했던 ‘아비시니아 차’는 수피의 알 샤드힐리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인데 그는 또한 칼디의 전설에 등장하는 수도사 ‘스키아들리’와 동일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알 샤드힐리(Al-Shadhili)를 이탈리아 말로 번역하다 ‘스키아들리’가 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주장이다.

커피의 역사에서 알 샤드힐리는 이곳저곳에 등장한다. 어떤 것은 조금은 황당무게한 내용이지만 대부분은 어느 정도 있을 법한 내용들이다. 12세기 말에 탄생한 그는 튀니지와 알제리, 이집트, 메카 등에서 넓은 지역에서 활동하다 1258년 사망 한 후 그와 관련된 교단이 아프리카에서 인도까지 널리 퍼져있었기 때문에 이 들에 의해 커피가 퍼졌다고 한다.

그들의 종교적 수행이 커피와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수피들은 잠들지 않는 고행을 수행하려 했다. 수피의 시인 사라는 이렇게 말했다.


‘주의하라. 눈뜨고 있으라. 삶이 허무하게 지나가 버리지 않도록…’


수피들은 마시면 잠들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커피로 잠을 자지 않고 하는 수행이 훨씬 수월했기 때문에 커피를 애용했다. 또한 수피들은 식사를 하는 시간은 의미없는 시간이라 여기는 금욕주의 였는데, 커피는 식욕을 없애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부누(Bunnu)’ 가 이슬람으로 와서 ‘카와(Qahwa)’가 되고 이 단어가 어원이 되어 지금의 커피라는 이름이 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겠지만 아랍에서 ‘카와’라는 말로 불리게 된 것은 특이할 만한 일이다. 이유는 아랍어 Qahwa의 어근은 Q, H, W 3개의 자음인데 그 의미는 “무언가 욕망을 없애다, 적게하다, 조심하다.’라는 뜻으로, 식욕을 없애는 포도주를 뜻하기도 하였고, 예멘사람들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씹어 약간의 환각작용을 내는 카트잎을 뜻하기도 하였으며, 커피를 뜻하는 말이기도 했다. 다만 이슬람에서 와인이 금기가 되고 커피가 주류를 이루며, 이런 역할을 하는 유일한 것이 커피가 되면서 현재는 ‘커피’라는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카와라고불렸던음식들.png [그림3] 카와라고 불렸던 음식들


그 외에도 커피를 마시면 살이 빠지고, 흥분하는 등의 효능 때문에 수피들은 커피를 대단히 성스러운 음료로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커피를 대접한 손님에겐 충성을 다하고 반나절 동안의 절대안전을 보장했다. 적대관계의 사람에게 커피를 준다는 것은 동맹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했다. 고대부터 소금과 빵은 신전에 재물로 사용되고 소중한 손님에게 접대한 귀하고 신성한 음식이었다. 오랜 동안 굳어진 소금과 빵과 함께 갑자기 등장한 커피는 나란히 신성한 음료가 된다.

수피의 데르비시들이 아라비아를 반도를 돌며 종교의식을 행할 때 수피의 거처는 커피향을 풍겼고, 그들을 따라 커피가 퍼진 것은 어쩌면 필연적 운명이었을 것이다. 수피교도와 커피는 땔레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되어 예멘의 수피교도는 커피라는 상품을 탄생시켰고, 터키의 수피교도는 커피를 북아프리카와 중동에 퍼뜨리게 된다.

알제리에선 ‘알 샤드힐리’를 자국어의 발음대로 만들어진 단어 ‘샤딜리에’가 커피의 이름을 대신했다고 하니 이는 커피를 탄생시키고 수피교를 이끈 사람을 향한 마음 아니겠는가…

[그림4] 좌측 2개는 수피의 심볼이며, 우측 로고는 수피의 심볼을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커피브랜드 인텔리젠시아 커피 로고


중동을 넘어 유럽지역으로 퍼진 명성

알 샤드힐리의 전해오는 이야기 중 포루투갈 선원들과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오랜 여행으로 병들고 지친 포루투갈 선원들이 모카 항구에 들렸을 때 그들에게 알 샤드힐리가 여러 해 동안 신비한 약을 주어 이것을 먹고 며칠 만에 모두 몸이 회복되어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한다. 그들은 자신을 구해준 그 신비한 명약을 유럽에 알렸고 알모카와 그 신비한 명약 즉 커피의 이야기가 유럽으로 알려졌다는 일화이다. 선원들이 포루투갈에 도착해서 신기한 약물에 대한 이야기를 퍼트렸고, 위험한 순간이 일상인 선원들에게 한 선지자가 권한 이 음료가 신비하게 비추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아비시니아차끓이기.png [그림5] 알 샤드힐리의 신비의 명약 아비시니아 차(상상그림)


수피의 데르비시 들의 수행은 에스파냐 지역에 까지 이어졌으며, 지금도 스페인에는 ‘알 샤드힐리’라는 집단이 존재한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수피는 커피를 유럽의 일부지역에 까지 퍼지게 하는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주변 지역으로 퍼진 명성이든, 커피의 효능이 정말로 훌륭했든 예맨의 알모카는 1000년 동안 커피의 메카가 되었다.

1606년 기록에는 알모카 항구 주변에는 화려한 커피 궁전이 들어섰으며, 세계 각지에서 35척이 넘는 상선이 모여들어 커피자루를 기다렸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예맨에서 터키로…

1400년 대에 이르러러 예맨은 터키에 의해 정복당하게 된다.

에티오피아의 속국으로 최초의 커피 재배와 최고의 커피 교역항구까지 거느렸던 예맨은 다시 터키에 정복당하면서 커피를 터키로 퍼지게 되는 반복적인 역사 고리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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