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울엄니!'

간절히 원하고 바랐더니

by 박점복

하얀 모시옷 예쁘게 차려입은 우리 엄니, 성경 가방 왼쪽 어깨 쪽으로 걸쳐 아래로 맨 채 바쁘게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셨어요. 어찌나 정갈하고 단아하시던지요. 그러면서도 짱짱하게 걸어가십니다. 우리 엄니의 생전 전형적인 모습이셨거든요. 멀리서 봐도 표가 나는.


넉넉진 않으셨어도 자식들에게 힘겹다 티 한 번 안 내시던 오뚝이 같던 우리 엄니, 교회 여성 모임의 회장 몫은 늘 따 놓은 당상처럼 맡으시고 야무지게 해결해 내셨어요. 어떻게 깨우치셨는지 그 어려운 우리 한글, 역시 우리는 따라갈 수 없고 말고였습니다. 학교 근처도 가신 적 없으셨는데도요


그 엄니가 어느 날 다섯 칸 밖에 안 되는 높이의 짧은 계단을 오르시다 넘어지신 후로는 병원, 요양원 신세를 벗어나질 못하셨어요. 그 힘든 수차례의 투병 생활도 잘 버텨내셨지만 야속하게 하늘은 자꾸 우리 엄니를 이사시키려 하셨습니다, 그곳으로.


게다가 그놈의 코로나 시국까지 겹쳐서는 찾아뵙고 말 한마디라도 더 건냈으면 하는 바람까지 감염병이 매몰차게 막아버리더라구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시다가 마침내는 식사마저 스스로는 불가능한 상황까지. 병원 기구의 도움 없이는 영양 공급이 어려운 처지까지 이르고 나서부터는 자식들 방문조차 반기질 않으셨습니다. 늘 건강하실 줄만 알았지 이런 모습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세상 그 어떤 자식들이.


본인도 하늘의 뜻을 어렴풋이 알아차리신 듯 찾아뵙고 몇 마디 나누지도 않았는 데 연신 손사래를 치셨어요. 질긴 정 떼 내시려는 듯 안타깝기 그지없게 눈물까지 보이시며 말입니다.


'빨리 가!' 손을 흔드셨어요. 어떤 때는 화까지 내시면서요.


아니 엄니 뵙고 좀 오래 얘기도 나누고 싶었는데 정을 떼셔야만 하셨나 봅니다. 뵐 적마다 피골이 상접하다는 안타까운 표현이 딱 맞았습니다. 새털처럼 가벼워진 몸을 휠체어에 태우고는 요양원 주위를 산책시켜드릴 때가 그래도 좋았었네요.


그렇게 하늘나라 더 좋은 곳, 고통도 질병도 없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신 지 이제 막 반년쯤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만큼에서 우리 그 엄니가 나보다 한참이나 앞선 채 건강하던 그 시절 모습으로 어딜 바삐 가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뒤도 한 번 돌아보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그립고 보고 싶어, 꿈에서라도 한 번 뵙길 간절히 원해 봐도 나타나지 않으셨는데...... 그 엄니가 저만큼 앞에서 걸어가고 계시다니요. 꿈인지 도무지 생시인지요?


한참을 뒤쫓아 가다가 문뜩 속으로 혼잣말을 다 했습니다. "엄니! 어디 가세요?"생전의 엄니 모습과 어쩌면 그리도 똑같으시던지요. 그렇게 앞서 가시던 엄니 모습의 또 다른 여인을 만나며 하늘만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150cm도 채 안 되신 작디작은 체구 어디에서 6남매를 키워내신 힘이 솟아나셨을까요?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도 무려 40여 년 억척스레 혼자의 몸으로. 조금은, 이제는 힘에 부치기도 하셨을 모습으로 앞서 가시던 또 다른 여인이 날 묘하게 흔들었습니다.


"엄니! 그립고 몹시 보고 싶어요, 오늘따라......" 그렇게라도 만나라며 하늘이 보내 준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생전의 엄니 모습을 그렇게 맞닥뜨렸습니다. 착시 현상이면 좀 어떻습니까? 기회를 주셨으니 고맙기 그지없을 뿐이지요. 며칠 전에는 보행 보조기 힘들게 의지하며 걸어가던 모습으로 제 곁에 오셨더랬는 데요.


그렇게라도 자주 우리들 곁에 오세요, 엄니! 울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