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곁에 두고 오늘을 산다

by 문성훈

누구나 그런 날이 있다.
오늘 친구 아버지의 부고 문자가 왔다. 뒤이어 SNS에는 아끼는 후배 시인의 이른 죽음에 가슴아파하는 이의 글이 떴고 슬랙에는 자신의 폰에 남아있는 15년전 돌아가신 사랑하는 누님의 전화번호를 보고 쓴 지인의 글이 올라왔다. 불과 한 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벌어진 일이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다. 그리고 누구나 그런 날도 올 것이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현재를 낙관적이기보다 비관적으로 보고, 다가올 미래에 희망을 걸고 살지 않은지 오래됐다. 그래도 오늘을 사는 것은 아침에 눈이 떠져서고 밤이 몰고오는 불안을 버틸 체력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보다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눈물 짓느니 웃으려고 한다. 어차피 부질없고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일 바에는 나태하고 무책임하지만 마음 편한 선택이다.

십여년 전에 가깝게 지내던 형님이 암선고를 받은 지 한달만에 돌아가셨다. 누구보다 건강했고 늘 유쾌한 분이셨는데 가족도 그러했겠지만 나로서도 황망했다.
강남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님 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더니 아직 번호가 살아있었다. 녹음으로 넘어가길래 울다 웃다가 고마웠다고 했다가 원망도 했다가 마지막에는 실컷 욕지거리를 푸지게 널어놨다. 그렇게 눈물, 콧물 쏟으며 88도로를 달렸었다.

그에 비하면 아버지는 1년 반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그 시간을 주신게 나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처음으로 아버지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봤고 농도 했다. 그리고 당신이 "이제 그만 하자" 하셨을 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말씀을 하시고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병수발 하시느라 어머니마저 편찮아지실까 걱정이 되서 요양원을 알아보려고 내심 마음을 먹고 있었던 시기과 맞물렸다. 아들에게 옅은 죄책감 한 자락을 깔아놓으시고 당신은 가셨다. 그래도 1년 반을 주셨다. 그 시간은 당신을 위한 시간이 아니셨음이 분명하다.

간난아기때부터 봐오고 특별히 이뻐하던 사촌 막내가 자살했을 때도 그렇다. 납골당에 안치하고 온 날 밤새 아파트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리고 녀석과 혼잣말로 대화를 나눴는데 마지막으로 내가 구시렁 댄 말은 "그래 이꼴 저꼴 안보고 일찌감치 잘 갔다'였다.

한달, 1년반, 순간... 예정된 죽음이든 갑작스런 사고였든 나는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읽지 못한다. 설사 그럴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해도 달라질 건 없다. 그로 인해서 내 삶이 바뀌지도 않았으며 그들도 내 삶 속으로 들어 올 수 없었다.
살아있어서 이런 말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슬픔. 안타까움. 절규, 원망 그깟 것들도 알고보면 칠판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낙서에 불과하다.
남은 사람은 잊었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은 그런 감정조차 남김없이 지우고 갔다. 할 수만 있다면 백묵보다는 지우개를 쥐고 있으려한다."

이런 글을 슬랙을 올리고 가방을 열어 한 묶음의 종이 뭉치를 꺼냈다.
어제 모임에서 오랫동안 공황장애를 겪다 이제는 완전히 회복된 지인이 그 기간동안 썼던 일기를 복사해서 줬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고 우리는 흔쾌히 받았다.
자살충동에 우울증까지 시련의 강을 위태롭게 건너온 걸 알기에 마음껏 축하해주고 싶었다. 자신의 일기를 남에게 보여주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결단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이런 일종의 의식을 통해 혹시라도 의식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을 지도 모를 찌꺼기들까지 깔끔히 쓸려나가기를 바랬다.
그는 자신이 건너온 강의 징검다리를 일러주고 싶어서 어렵게 용기를 냈다.

표지에 [ 2015.7~ 2018.7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으나 나머지 삶을 보다 의미있게 살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준 시기"라고 하고 싶음]이라고 씌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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