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소질은 개발한다지만_2

by 문성훈

인테리어 업계는 다른 업종보다 그 바닥이 좁습니다. 누구든 한 다리만 건너면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 3D 작업만 시켰던 그의 소식이 들리는 겁니다.
그래서 같이 입사했던 여직원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녀는 제가 퇴사한 그 회사가 대기업과 합병을 하자 제 회사에 입사해 있었거든요. 그녀는 학과선배이기도 한 그의 소식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ㅇㅇ씨 회사 차렸다며? 알고 있었어? 근데 왜 말 안해줬어?"
"네. 그때 그만두고 사무실 낸지 꽤 돼요. 근데 예전에 실장님께 뭐라고 하고 나갔는지 알아서 말씀 못드렸어요"
"유학 간게 아니었구나. 그게 뭐라고.... 3D MAX하는 회사라던데?"
"네. 강남에서 제법 알려진 .... 잘 돼나봐요, 직원도 꽤 돼고."
"그래? 성공했네. 우리 일도 한번 맡겨봐. 이번에 하는 프로젝트 3D는 거기로 외주 줘"
"그래도 돼요?"
"뭔 상관이야. 잘한다며... 실력이 괜찮다며... 회사도 크고... 어차피 외주 줄건데..."

내심 보다 나은 조건이거나 더 잘해 줄거라는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그런데 며칠 후 그 여직원이 무척 난감한 표정으로 보고를 했습니다. 기존에 거래하던 회사보다 더 비싸게 요구하고 납기일도 더 달라고 한다는 겁니다.
조금 화가 났습니다. 일부러 나를 불편해할까봐 후배되는 그 여직원에게 시켰는데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왜 여직원이 난감해하는 지도 알겠더군요.
"알았어. 내가 통화해보고 결정하자. 그 회사 전화번호 좀 줘"

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나야. 오랜만이네"
"아... 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회사 잘된다며? 축하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본론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우리 회사 ㅇㅇㅇ프로젝트 말이야.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려?"
"얘기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회사 일이 좀 많아서... 밀려있는 작업도 있고... 그리고 아시겠지만 요즘 직원들이 말도 잘 안듣고 야근도 안하려고 해서...." 그의 대답에 실소가 나왔습니다.
"그렇지 뭐...그런데 작업비도 쎄든데. 원래 거기는 그 정도 받아?"
"저희 회사가 좀 비싸게 받긴 합니다. 제가 정해놓은 원칙도 있고해서..." (원칙. 좋지)
"알았어. 내가 생각 좀 해보고 연락줄게"
그다지 흔쾌히 일을 맡고 싶지 않다는 뉘앙스를 받은데다 그의 태도와 말에 마음이 언찮기도 했지만 내색하기는 싫었습니다. 다시 그 여직원을 불러서 지시를 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발주내던 단가와 납기를 알려주고 그래도 내켜하지 않으면 시키지 마. 다른 얘기는 하지말고...."
"네"

어쨌거나 그 일은 그 회사에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다시는 맡기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도 개의치않았을 겁니다. 회사규모로만 보자면 이미 저희 회사보다 더 크기도 했고 아마 저를 생각하면 그도 불편했을겁니다.
공적인 관계는 그랬었지만 사실 저는 그 친구와 통화했던 그 날 이미 그를 지웠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생각보다 쉽습니다. 드물지만 제게 있어 그 사람을 마음에서 지운다는 건 죽이는 걸 의미하는 겁니다. 그 사람이 제게는 아무런 의미도 관심도 없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후 그의 소식은 모릅니다. 설사 의도치않게 알게 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았을 겁니다.

참. 처음 인턴으로 그와 같이 입사했던 그 여직원 얘기를 빠트려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저희 회사에 있으면서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고도 오랫동안 다녔습니다. 제 회사에서만 10년 넘게 다녔으니 전 직장에서부터 따지면 15년정도 될 겁니다. 정말 일 잘하는 직원이었고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않는 디자이너였습니다.
이전부터 저는 여직원을 채용할 경우 나중에 지키든 못지키든 근로계약서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결혼을 하더라도 이후 아이를 가지더라도 일을 계속할 건지 반드시 묻습니다. 그리고 계속 일을 할거라고 해야 채용했습니다.
직원을 채용하는 일은 쉽지만 인재로 키우는 일은 무척 어렵습니다. 그러니 중도에 다른 외부적 요인으로 일을 그만두는 것보다 안타까운 일은 없습니다.

아마도 오랫동안 고민했을 그녀가 사직서를 들고 와서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 제게 무척 미안해했습니다.
"큰 애까지는 시부모님 곁에 있어서 그나마 맡길 수 있었는데 얼마 전에 분가를 해서... 둘다 어린데다 하필 둘째도 사내라서 그런지 도저히 안되겠어요."
"그럴거야. 할 수 없지 뭐.... 그래도 집에서 손 놀리지 마. 프리랜서로 일을 받아서 하건.... 니 실력이면 하고도 남지. 최근 디자인 경향도 계속 읽고.... 알았지? 꼭..."

신입으로 대기업 입사했더니 자신에게 탕비실 정리시킨다고 그만뒀다는 여성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취업준비도 열심히 하고 토익도 980인데 자신이 여성이어서 그런 대우를 받는 것같기도 하고 어차피 천만원정도 모아서 퇴사할 생각이었으니 딱 그만큼을 모아서 퇴직했다고 한 모양입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대기업이 탕비실 정리시키려고 토익 980의 아마도 대졸이었을 신입직원을 채용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마 신입으로 맡겨진 일 중에 탕비실 정리가 있었을 겁니다. 모든 직원이 드나드는 탕비실 정리에 남다른 성의를 보였거나 아이디어를 냈다면 그녀에 대한 평가나 직장생활이 달라졌을 겁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일반적으로 신입으로 입사해서 2년이 되기전까지는 거의 제 몫을 못해서 기업 입장에서는 교육기간 혹은 투자개념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인사책임자는 경력직 지원자의 이력에서 2년도 안다닌 경력은 감안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너무 직장을 자주 옮긴 이도 탐탁치않게 여깁니다. 주요 부서나 보안을 염려하는 부서에 발령내는 것도 꺼렸지요.
많은 청소년들이 꿈꾼다는 아이돌도 그 기간이상을 배고픈 연습생 신분으로 보냅니다. 밥값은 물론 교통비도 안줄뿐더러 오히려 렛슨비를 자비로 내는 경우도 있답니다. 그런데도 그 중 0.1%도 성공을 못합니다.
업종은 달라도 기업의 생리나 속성은 매한가지일겁니다.

더 깊숙한 내막을 들을 수 있었던 지인의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공기관에 민원인을 상대하는 변호사인 계약직 여직원이 있었답니다. 계약만료를 앞두고 그동안의 근태가 안좋아서 자신의 재계약이 안될 것으로 예상이 되자 직속상관을 직장괴롭힘으로 고소를 합니다.
그런데 내용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변호사인 자신에게 복사용지를 사고 다과준비를 시켰다는 겁니다. 혼자 근무하는 곳인데 복사용지를 사주는 직원을 둬야 맞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을 찾아오는 민원인을 위한 다과를 누가 준비해야 할까요.
여러 관계기관에 그 직원이 진정서를 내고 고소도 했지만 결국 무혐의가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인인 그 상관은 그녀가 앞으로 공공기관에는 재취업을 하기 힘들지않을까 염려 비슷한걸 하더군요. 정년을 앞둔 경험과 연륜으로 왜 그랬는지 짐작은 하지만 바른 방법도, 본인에게 이로운 선택도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소질과 재능은 그나마 개발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만 타고난 인성과 성정을 바꾸기란 무척 어려워보입니다. 하물며 학업성적이나 학벌, 자격증 따위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제 세대라면 누구나 외우는 국민교육 헌장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하고...."
그런데 요즘은 그 뒷 대목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창조력과 개척정신은 자신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의미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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