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운 글이 있고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얼갈이 배추 맛이고 삶을 푹 익혀 내 놓는 글이다. 땀 냄새 물씬 풍기는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펄떡이는 글은 신선하고 외할머니 무릎을 베고 듣는 이야기도 정겹다.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석학의 강연같은 글은 고맙고 뒷굽이 닳도록 발로 쓴 유람기도 흥미롭다. 넘쳐나는 세상 정보를 체로 걸러주는 사람이나 통찰이 담긴 용기있는 글을 보면 탄복하다.
잔뜩 턱을 치켜든 겉 멋이 든 글이나 설익어 떫은 맛이 나는 글은 반갑지가 않다. 누군가에게서 어디선가 들어 본 이야기고 읽었던 교훈이다. 머리만 굴려 쓰거나 자아도취에 빠져 솜사탕처럼 달콤하게 유혹하는 글들이 대개 그러하다. 그런 글은 젊어도 허리가 굽었고 목소리는 점잖지만 경박하게 들린다. 어설프게 가르치려 들고 정답을 미리 적어놓은 문제지다.
지금은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장치로 평가받는 경영학은 20세기에 시작된 비교적 젊은 학문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 (1909~2005)는 다양한 삶을 체험하고 시대를 관통하면서 경영학을 인문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사람이다. 결국 경영이란 사람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뛰어난 통찰력만큼이나 유머를 잃지않는 따뜻한 사람이었고 현대의 위대한 스승중 한사람으로 평가받는다.
무엇이 그를 이런 사람으로 이끌었을까? 자서전을 통해 어린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인물을 만날 수 있으니 각별했던 할머니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는 할머니에게서 인생을 배웠고 선생님을 통해 교육에 눈이 떴다. 고집 세고 괴팍하지만 유머러스한 할머니는 피터 드러커에게 평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몸소 가르쳤다.
어느날 드러커의 할머니는 동네에 평소 안면이 있던 창녀가 목이 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기약을 찾아주려고 아파트 6층에 있는 그녀의 방까지 거의 기어올라갔다. 주변에서는 한낱 창녀에게 그렇게까지 친절을 베풀 필요가 있느냐며 원성이 자자했다.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다. “너희는 언제나 그 여자들이 남자에게 옮기는 끔찍한 성병만 걱정하지만… 나는 적어도 그녀가 젊은 남자에게 감기를 옮기는 일은 예방할 수 있다고.”
강원도 산골에서 군복무 하던 시절. 성탄절에 엄마가 면회를 왔다. 성수기라 친했던 다방 레지에게 여관예약을 부탁했었다. 뵙자마자 그녀가 지불했을 선금을 줘야한다고 돈을 좀 달라고 했다. 엄마는 내게 귤 한상자를 짊어지게 하고는 직접 그 다방을 찾았다. 그녀의 손을 감싸고는 당신 아들을 챙겨줘서 고맙다시며 귤을 안기셨다. 그리고 그녀가 잠시 자리를 떠났을 때 "미스ㅇ한테 반말을 하던데 너보다 나이가 많다면서 왜 그러느냐.... 내가 너를 그렇게 가르쳤더냐..... 혹시 이런 데서 일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대하느냐"시며 호되게 나무라셨다.
피터 드러커의 할머니와 나의 어머니는 인간에 대한 예의, 공동체에 대한 사랑 그리고 지식이 아닌 지혜를 가르치신 것이다.
나는 그런 글들을 사랑한다. 자신의 삶을 관통하는 빛줄기 같은 깨달음, 따뜻한 심장의 온기와 스테레오로 들리는 박동소리 그리고 입맛을 돋우는 쌉쌀한 호박쌈같은 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