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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05. 2021

부디 파도가 해일이 되기를...

당신이 바랬던 신분 상승의 첫번째 게이트를 통과한 날. 딸은 편지를 쓴다. 이제 정식교사가 됐노라는 딸의 편지를 받은 두 달 후 아버지는 흐믈흐믈한 파란색 양복에 감싸인 한마리의 새처럼 영원히 잠든다.
딸은 아버지의 말과 제스처, 취향, 당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던 사건들, 자신과 함께 나눴던 한 존재의 모든 객관적인 표적을 모아 단조로운 글을 쓴다. 그녀가 부모님께 중요한 소식을 말하기 위해 썼던 그날의 편지처럼....
그녀는 자신의 책에서 ‘소설’이라는 명칭을 지웠다.

새벽 모임이 있는 날이라 일찌감치 잠을 청했다. 일찍이라고 해야 12시를 넘긴 시간.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깨어보니 2시15분이다.
지난 경험으로 다시 잠들기 어렵다는 걸 안다. 나로서는 어쩌지 못하는 심연의 뒤엉킴이 있어서거나 충분한 수면을 취했다는 신호다. 충분한 수면은 아닌것 같으니 심연의 바닥을 훑고 지나간 무언가를 안고 잠이 들었다는 의미다.
어제 밤 두 파장이 비슷한 진동폭으로 겹쳤다. '아니 에르노'의 자전적 소설《남자의 자리》를 읽었고, 미얀마 소녀의 죽음을 검색했다.
한번에 두 파도가 겹쳐 파고가 높게 일었나보다. 나로서는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잠을 청해보는 부질없는 시도를 하다 자리를 털고 일어아 샤워를 했다. 책갈피을 뒤척이고 스마트 폰을 기웃거렸는데도 4시다.
첫 차는 5시 38분이라고 뜬다.

19살. 큰 눈망울만큼이나 꿈이 많았을 딸의 이름은 ‘치알 신’이었다.
아버지는 혈액형과 연락처, 시신 기증 의사를 명찰처럼 붙인 딸의 팔목에 붉은 띠를 감아줬다고 했다. 외동딸. 그렇게 집을 나서던 모습이 마지막일거라는 상상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설마 탄환이 딸의 조그맣고 사랑스런 머리를 꿰뚫을 줄은, 선연한 붉은 장미꽃잎으로 흩날려 시신을 덮으리라는 꿈을 꾸지도 않았으리라.
에인절(Angel). 소녀의 또다른 이름처럼 무도한 어른들이 가두려했던 차가운 철 조롱의 문을 열고 하얀 날개를 펴고 날아올랐다.
아버지는 딸의 가는 팔목에 붉은 띠를 감아줬던 그날처럼 딸의 영정사진에 검은 띠를 두를 것이다. 떨리는 손길로...

딸은 아버지를 담담히 추억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딸을 그리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새가 되어 누워 영원히 잠드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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