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Apr 04. 2021

죄절하며 꿈꾸는 삶

어느 날은 갓 신내림받은 애기무당처럼 주절주절 잘도 읊어대다가 또 어떤 날은 맥이 풀려 주저앉게 된다.
겁도 나고 쪽팔려서다. 누구때문인지도 알고 왜 그런지도 아는데 감히 탓할 수도 없고 어찌해 볼 엄두도 안나니 그야말로 팔짝 뛰고 환장할 노릇이다.

모가지가 아파 오래 올려다보지 못할 작가가 범인이고 그의 책이 문제다.
마음속 선생으로 모시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여야지 말대꾸라도 하고 이건 아니다 싶은 문장 하나라도 걸려야 그나마 안도할텐데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내가 쓰는 글이 형편없다는 걸 알면서도 끼니를 거르고 흠뻑 빠져 쓸 때가 있는데 오늘은 영 의욕이 안생긴다.
도대체 얼마나 공부를 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이런 말을 하고 그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언제쯤 현미경 같은 시력과 고양이 수염 같은 감각을 가지게 돼서 비로소 글다운 글을 쓸 수 있을지 암담하다.

4년째 격주로 만나는 새벽 독서모임이 있다. 읽으면서도 짜증이 났었는데 대화를 나누다보니 화가 났다.
오늘은 이성복 선생의 책이다. 나같이 소잡한 인간은 도달할 수 없는 경지를 만나면 질투심과 열등감으로 화를 낸다. 선생의 책은 어느 것을 읽어도 그렇다.
그가 시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라 했고 산문은 노동이라고 했다. 내 식으로 해석하자면 천둥 벼락과 함께 내려 꽂히는 운석을 줍는 것이 시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헤매고 다녀야 그런 운이 닿을까싶어 시는 애저녁에 포기했다.

글쓰기는 염을 하는게 아니라고 했다.
염하는 걸 여러 차례 봤다. 요즘은 방법도 다양해서 온갖 모양을 낸다. 한결 같이 시체는 맑게 닦여있고 염습은 간결하면서 아름답다.
그러데 글쓰기는 시체 공시소에서 천으로 덮힌 시체를 보는 두렵고 공포스런 대면. 결국 그 원초적 장면, 그 절대 고독을 기억하고 조명하는 것이라 했다. 비겁하고 용기없는 나는 자신도 없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나마 산문은 감자 캐는 농부처럼 열심히만 하면 넝쿨에 딸려나오지 않을까 하는 요행을 바라고 긁적이는 것이다.

비루한 글쓰기고 잡문에 불과하지만 스스로 늘 경계하는 것이 있다.
장물아비는 되지말고 시골 장터의 행수노릇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도둑질한 남의 귀하고 소중한 글을 싸게 내다 팔지 않을 것이며 입담좋은 행수처럼 너저분한 사설은 늘어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희멀건한 국물에 작은 건더기 하나 정도는 건질 수 있게 해야겠다는 다짐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책을 건네는 것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자기 임종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했다.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내 상처와 수치를 드러내지는 못할망정 가식적인 분장으로 사기는 치지 않겠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슨 수를 써도 세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남과 아파트 평수로 견주다 여의치 않으면 강남이냐 비강남이냐는 따지는 게 우리네 삶이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듯 나무의 엄마는 나뭇잎이다. 햇볕을 받고 광합성을 해서 나무를 살리고 키우는 것은 이파리다. 그렇게 숲을 이루듯 우리는 도시를 만들고 산다.
그런데 나뭇잎은 먼저 난 아래 잎과 엇갈리며 방사상으로 윗잎이 돋아난다. 햇볕을 골고루 받으려는 생존의 지혜다. 가뭄이 들면 큰 나무는 키작은 나무에게 뿌리로 수분을 전달한다. 식물도 그러하다. 하물며 우리는 인간이다.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이 자연의 이치고 윤리적인 태도다.

물 속에 사는 기생충 중에 연가시란게 있다. 이 기생충을 모기가 잡아먹고 그 모기를 잡아먹은 사마귀의 뇌를 연가시가 조종해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있다. 기생충을 연구하다 스스로 기생충이 되기도 하는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기도 하다. 뭇 사람들을 시궁창 속으로 끌고 들어가려는 것이다.
설사 그렇더라도  우리는 카프카의 이 말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이든 거칠게 대하면 거칠게 대하는 사람이 더러워진다. 그렇지만 초대받은 손님처럼 대한다면 언제까지나 품위을 잃는 일이 없고 고귀할 것이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Michelle Obama) ”다.

작가의 이전글 슬기로운 PD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