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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Apr 04. 2021

알딸딸 혼술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했을텐데 요즘은 아파트 동 현관마다 디지털 키가 장착되어 있다. 호수를 누르고 비밀번호를 눌러야 문이 열린다.
그런데 아주 가끔 오른손잡이인 내가 늘 누르던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번호를 눌러야 할 때가 있다. 호수도 번호도 익히 아는데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어김없이 한 두번은 버벅거리게 된다.

인간은 뇌로 기억하고 뇌의 신호를 받아 수족을 놀린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신경과 몸이 함께 작동한다는 증거다. 그것은 마음일수도 있고 느낌이기도 하다.
그에 대한 연구를 하는 학자도 있는데 뇌과학이 밝혀내지 못하는 지점까지 분석해낸다.
이렇게 인간은 오묘하면서 때로는 생각과 몸이 따로 놀기도 하는 존재다. 오랫동안 뇌로만 문제를 파악하고 이론만 주창했지 몸으로 세상을 밀고나가 본 적 없는 사람은 생각만 바꾸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믿는 경향이 더욱 짙은 것 같다. 오른손으로 누르던 버튼도 왼손이 익숙하게 누를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인사가 먼저 디딘 제 발에 다른 발이 걸려 계속해서 앗싸 호랑나비 춤을 추는 모습은 볼썽 사납다.
예전의 행적을 한번에 뒤집으려니 쉽지도 않으려니와 그것들이 자꾸 돌부리처럼 튀어나와 발에 채이고 스텝은 연방 꼬인다.
오랫동안 왼손잡이로 살다 오른손잡이 흉내를 내려니 수월할리 만무하다.
그나마 전에는 자신이 비난하던 오른손잡이 외눈박이들이 아낌없이 박수 쳐주고 잘한다 잘한다 삼삼칠박수로 호응해주는 게 위안이다.

죽이 맞던 이전 패거리에서는 떨어져 나왔고 합류한 패와는 화학적 결합이 덜 된 그가 최근에 맛을 들인 놀이가 있다.
혼술이나 혼밥처럼 혼자 할 수 있는 이른바 ‘혼놀’이다. 모두가 아는 신문접기 놀이인데 혼자 한다는 것만 다르다. 신문을 반으로 접었다가 반에 반으로 접고 그렇게 자신의 영토를 좁혀가며 균형을 잡고 언제까지 안쓰러지는가 하는 게임이다.
펼친 신문지는 이제까지 수없이 떠오르는 대로 뱉었던 말이고 이러저리 줏어 담아 쓴 논리다.
사람들의 무심한 발길질에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 어느 시점에 맨홀에 빠질 지 모르는 깡통 같기도 하고, 학생들이 주고 받으며 차고 놀다 쓰레기통에 버리는 찌그러뜨린 우유곽 같기도 한 그의 이름은 진중권이다.

고 채현국선생의 인터뷰 중에 긴 축에 드는 것이 노/유/진의 정치카페다. 먼저 간 노회찬의원과 만나셨을 테니 지금쯤은 못다한 얘기를 나누실 것도 같다. 유시민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한 채 작가의 길을 가는데 유독 진중권은 못된 송아지처럼 곁길로 빠져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댄다. 그마저 내 기분이고 판단에 불과할 수 있다.

어른은 떠나셨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니 심산해서 왕복 30분을 걸어가 떙초 부추전을 사왔다. 혼자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데 딸아이가 맞은 편에 앉더니 냉큼 내 잔을 비운다. “카아~ 이 맛이야.”
누구를 탓하리오. 아~ 유전자의 위대한 힘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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