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

by 문성훈

이제나 저제나 언제쯤 끊으실까 기다리다못해 입모양과 수화로 "저 갑니다"여쭙고 나왔다.

어제 저녁에 근처 미팅이 있어 어머니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오늘 아침상을 물릴 즈음 알람처럼 부산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물 한잔 마시고 후식으로 내어주신 포도 먹고, 화장실에서 쾌변 보고, 가방챙기고, 옷챙겨 입을 때까지 통화가 이어진다.

"하이고 그랬드나...그러게... 어제 문재인 대통령... 그 뭐꼬 부동산문제... 우째 '죽비'맞은 거 같다카대... 글캐 카톨릭이람서 그 말을 알더라꼬... 그라모 예전에 즈그는... 문디..."
"하 그래도 그것들은 잘몬하고 반성하는 거 누가 몬하끼고 그라기꾸만... 그라고도 남을 것들이제....암만 맞는 소리, 옳게 잘해도... 그것들은 머리속에 인이 박히가꼬 우쨌든 달기들어서 헐뜯을라꼬...ㅉㅉ"
어제 대통령 기자회견을 꼼꼼히도 보셨나보다. 예상컨대 족히 2시간은 넘길듯 하다.

팔순을 넘긴 두 분의 경부선 통화는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다.
자라면서 외갓집 3남3녀 동기간같이 서로 위하는 정리를 어디서고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어머니와 막내 이모의 우애는 각별하다. 그 정도 세월이면 한두번 의견이 갈라질 법도 하고 심사가 틀려 소강상태일 때도 있으련만 단 한번도 그랬던 적이 없다.

어머니는 늘 "나는 우리 ㅇㅇ신세를 다 못갚고 죽을끼구마"라고 하신다.
이모는 쑥이 올라오면 쑥떡을, 홈쇼핑 채널에 자글자글 군침도는 돼지갈비가 나오면 그것을, 추운날 폭삭하고 꽃가라인 패딩이 눈에 띄면 2벌을 사서 한 벌은 어머니께 올려보낸다. 그러고보니 어제 저녁 밥상에 올라온 돼지 고기와 두릅도 이모가 보낸 것이라 했다.
어머니 역시 동생 일이라면 열일을 제치고 먼저 챙기신다. 이모가 화장실가다 엉덩방아를 찧어 거동이 불편하실 때도, 김장철에도, 이모부와 다투시고 토라져 계실 때도 어김없는 119출동이다. 그러니 이모는 골수 '언빠(언니빠)'다.

두 분은 서로 당신들 속에 들어갔다 나온 분들 같다. 의식도, 주관도 인생관 심지어 정치적 입장까지 판박이인데다 시댁, 자식의 대소사까지 모르시는 게 없다. 아마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속속들이 아는 사람은 서로라고 지목하실 분이다.
그렇다보니 두 집 자식들은 어머니 당신 계신 곳 날씨가 흐린듯 싶은데 말씀을 안하시면 각자의 이모에게 이상기후의 발생원인과 대책을 여쭙는게 불문율이 됐다.
이모는 내게 "훈아 혹시라도 느그 이모부 먼저 돌아가시모 우리 새이(언니)하고 내하고 같이 살그로 부산 내리와 사시라캐라"당부하신다.
내가 무슨 권한이 있을까만 그만큼 따르고 의지하는 형제고 버팀목이라는 의미다.

오랜세월 연리지처럼 한 몸 되신 두 분이라 한 분이 몹시 편찮으시거나 혹시라도 먼저 돌아가시면 어쩌나 벌써부터 걱정이다.
한 몸에서 난 형제끼리도 남보다 못하게 갈라서는 게 흔한 세상이고보니 하루 일과에 빠지지않는 두 분의 긴 통화가 오래 아주 오래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치매예방에도 좋을 게 분명하다.

'지금쯤 끊으셨을래나... 주무시기 전에 또 한 두차례 더 하시겠지. 팔십평생 대화를 이어가셨어도 더 하실 얘기가 있고 새로운 소재가 있다니... 허 참...'
한국 통신사의 담합적 행태, 독점적 수익구조가 못마땅하긴 하지만 '무제한통화 요금제' 그거 하나는 잘 만들었다.
부디 눈떠서 주무시기 전까지 스마트폰이 달아오를 때까지 맘껏 통화하시라. 한국기업이 스마트폰도 튼튼하게 잘 만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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