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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y 17. 2021

주책맞은 진정제

스승의 날 / 광주

열차를 놓쳤다. 게으름 피다가, 역에 늦게 도착해 놓쳤다면 덜 억울할텐데 (그런 일은 거의 없다) 멀쩡히 눈 앞에서 놓쳤다.

행선지가 다른 두 열차를 잇대어 운행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운좋게도 이전까지 그런 경우를 마주치지 않았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찾아봐도 기다리는 'KTX4ㅇㅇ호'가 안보인다. 플랫폼에 대기한 열차 옆구리에는 '여수행 5ㅇㅇ호'라는 LED 팻말만 점멸한다. 나는 목포행이다.
'연착인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통로와 계단을 오가다 마침내 발매창구에서 그 사실을 알고 뛰어가니 간발의 차이로 문을 닫고 출발해버린다.

"안내방송을 했는데..." 비슷한 안내방송을 들었다. 흘려들었던 내 탓이다. 역무원은 안타까워하면서도 반환수수료를 징수하고 1시간 뒤에 출발하는 티켓을 끊어준다. 속이 쓰리다.
다음 역에서 합류하려던 친구에게 알렸다. 오히려 나보다 편안하다. 그는 이미 그런 경우를 알고있었다. 역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그가 들고 탔을 내 몫의 커피는 그대로 식어버릴 것이다.
'그럼 번갈아 열차편을 띄워줘야 할거 아냐? 객차 승무원이 나와 있든가... 승차권에 표시라도 해주든지...' 타고 갈 열차를 눈 앞에 두고 뛰어다녔던 내 모습도 바보같기만 하다.
' 아니야 그래도 다음 출발하는 열차가 있어 다행인거지... 내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탓이야... 출발시간 남았다고 여유를 부린 바람에 그래. 내 탓인거지 다음편 열차에 좌석이 있는 게 어디야. 다행이지. 암' 기분이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새로 발권 받은 표를 보니 좌석이 4C다. C면 통로측이다. '순방향'만 일러줬더니 그리 끊어줬나보다.
'창측과 통로측 무엇을 선택할 지 물어봤어야 할거 아냐? 아니야 그마저 지정하지 않은 내 탓이야' 또다시 냉온탕을 오간다.
아직 시간 여유는 있다. 다시 발권창구로 갔다.
"창측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네. 잠깐만요. 음... 한 좌석 있는데 유아동반석인데 괜찮으시겠어요?"
 '아이들 때문에 시끄러울까?' 잠시 망설인다.
"유아동반석이라도 꼭 유아동반해서 타는 승객만 계시지는 않은데..."
"네. 그걸로 바꿔주세요."

어쨌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선생님을 뵈러가는 길이지 않은가. 광주 선생님(정확히는 '들'이다. 한 학교에 근무했던 부부교사셨다.)은 친구의 중학교 은사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흔치않은 인연이다.
친구는 sns를 하지않는다. 대신 내가 단체톡방을 열어 두 분과 수다를 떤다. 지금은 누구의 은사인지 헷갈린다. 언젠가부터 두 분에게 친구와 나는 셋트 메뉴가 됐다.

생각은 그랬지만 개운치않은 기분으로 좌석을 찾아 앉았다. 뒤이어 노부부와 아기를 품에 앉은 젊은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선다. 노부부는 내 앞좌석에, 젊은 엄마는 나란한 그 옆좌석이다. 눈만 붙은 고것도 당당히 한 좌석을 차지한다.
"엄마하고 여행가는구나. 몇개월이에요?"
"8개월이에요"
"아휴~  이뻐라. 용케 마스크도 안벗네."
앞좌석에서 오가는 대화를 듣다보니 자연스레 몸이 앞으로 기운다. 동여맨 머리가 봄비에 돋아난 새싹같다. 꼬맹이와 눈이 마주쳤다. 소리없이 '깍꿍...우루루 깍꿍'을 시전한다. 마스크 위로 빼꼼히 내민 녀석의 쬐끄만 눈이 까르르 웃는다.
젊은 엄마가 누군지 돌아본다. 거기에 한 주책맞은 아저씨가 손짓 눈짓으로 재롱을 떨고있다. 이내 좌석에 몸을 기댄 그녀가 손을 흔든다. '아기를 이뻐해줘서 고맙다는 걸까?' 착각이었다. 차창밖에 젊은 사내가 열차안을 시선을 고정하고 서있다. 아기 아빠가 아내와 자식을 배웅하러 나온 것이다. 친정나들이를 가나보다. 젊은 부부는 손 인사와 눈짓으로 애틋한 사랑을 확인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녀석의 환심을 사는데 열심히다.

이윽고 열차가 플랫폼이 밀어내면서 차창밖 장면을 바꾸려고 한다. 그녀가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손인사를 한다. 녀석은 나를 보고 까르르댄다. 어느새 내 속에 남아있던 더운 증기가 빠져나가는 걸 느낀다.
오십대 어른이 쉬이 다스리지 못하던 제 속의 화를 8개월된 꼬맹이가 사위게 한다. 신이 당신을 대신해 어머니를 보내셨듯 세상의 화를 잠재우려 아기를 보내신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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