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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y 29. 2021

아름다운 비행

기고만장했던 시기가 있었다. 내가 잘 난 줄 알았고 뭐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육체적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중이었고 정신적으로는 늘 풀무질하는 화로 속 쇠덩이처럼 뜨겁게 달궈져 있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다.
자존심은 하늘을 찔렀고 행동은 거침이 없었다. 내가 좋아해서 선택한 일이었으니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고 능력을 과신했으니 건방졌다.

당시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인테리어업자’였다. ‘나는 디자이너이고 작품을 만드는 사람인데 일개 장사치나 기술자 취급을 하다니…’ 뭐 그런 생각이 골수에 박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가장 많았던 시기기도 했다.
“다른 업자와는 다르신 것 같아요.” 긍정적인 대화 끝에 분명 칭찬으로 한 얘기였다.
“저는 업자가 아닙니다.” 그 한마디 던지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많은 수고한 이들의 고생이 한 순간에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업자’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들을 수 있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일반인의 의식 속에 기술관련 직종 종사자는 업자의 카테고리 안에 든다. 한 사람의 능력이나 노력으로 단기간에 바꿀 수도 없으려니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진정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떤 이름으로 불리던 상관하지 않는다. 돌아보면 자격지심이었고 치기어린 행동이었다.
겸임 교수로 대학 강단에 서게 되면서부터 ‘교수’란 말을 듣게 됐다. 요즘 표현을 빌자면 부캐가 생긴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업자이고 그것이 나의 본캐다.
내가 속한 업종이 지탄의 대상이 되더라도 도매금에 넘어가는 걸 억울해하지 않아야 한다. 수도꼭지 갈아주러 온 수리공과 혼동하더라도 탓해서는 안된다.
나 한사람이라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편견이나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고 업역을 구분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으로 남으면 된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껍질부터 깨고 나와야 한다. 출신, 학벌, 나이, 직업... 껍질을 이루는 막이 여러 겹일수록 그 껍질은 두텁고 질기다.
한때 권력을 견제하는 감시견(Watchdog) 으로 시대의 양심을 대변하기도 했던 기자라는 직업이 있다.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계에 종사한다. 대부분 고학력에 어려운 취업관문을 뚫고 '무관의 제왕'에 오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 저자거리에서 토사물이나 햝아먹는 똥개신세로 전락하고 사회의 목탁이 아니라 샌드백이 되어버렸다.
소명의식을 가진 참된 기자마저 쓰레기에 빗댄 기레기로 불리는 수모를 감수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설사 기레기를 자처하며 그 역할에 충실해서 대기자, 편집위원이 되고 편집장이 된들 기레기 대빵으로 불리기 밖에 더하겠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들 스스로 이 껍질을 깰 의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의식있는 줄 알았던 기자들마저 여전히 보신을 위해 '언론의 자유'라는 철옹성에 안주하려고 한다. 직업적 이해관계가 달린 문제에서만큼은 언론과 기자의 입장을 대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여전히 껍질을 머리에 쓴 병아리의 모습이다.
그럴수록 열악한 환경과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자부심과 긍지를 지키려는 진정한 기자들의 처지가 안타깝다. 그들을 품어줄 정론직필의 언론사가 눈에 띄지않는 현실에 화가 나고 걱정스럽다.
기레기라 불릴지언정 진정한 기자들이 방향을 잃고 대열마저 흐트린 채 날아오르는 혼탁한 무리에 끼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적은 숫자지만 별빛으로 방향을 잡아 아름다운 비행을 해주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응원한다. 갖은 가짜뉴스와 왜곡기사로도 모든 국민의 눈을 가릴 수 없듯 아무리 짙은 먹구름도  영원히 별빛을 가릴 수는 없다.

부디 그 장관을 가슴에 담고 영원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억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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