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벗

평창

by 문성훈

"그거 막걸리요?"
"네. 할머니 한 잔 드릴까요?"
"그럼 한 잔만 따라 줘봐. 한 잔이면 돼. 그거만 마시고 나 가야돼"
할머니는 어항을 놓아 잡은 물고기 바께스를 한 켠에 밀쳐놓고 자리를 잡으신다.

"강원도 분이신가봐요. 사투리가..."
"나? 아니. 서울 천호동에 살았었지. 여기 산 지가 30년이 넘었으니까"
"아 그러셨구나. 사투리로 강원도 분인 줄 알았어요"
"시댁이 강원도야. 죽은 바깥 양반이 태백사람이지. 태백공고를 나와서.... ....."
"그런데 서울 살다 어떻게 여기 오셨는데요?"
"허 참 그게... 저 건너편 큰 길에 ㅇㅇㅇ식당이라고..."
인근에서 음식점을 하던 바람 난 형부 주저앉히려 찾아왔다가 자신이 주저앉게 된 사연을 술술 풀어놓으신다.

올해 일흔 넷. 젊은 시절 지하 갱도에서 잠시 일했던 남편은 폐섬유종으로 20년 전에 세상을 떴다. 이후 바람끼 많던 형부도, 언니도 조카마저 한 해에 세상을 떴으니 말하자면 홀홀 단신으로 타지에 살고 계신 셈이다. 할머니의 신세타령이 중모리에서 자진모리로 가빠진다. 탄식과 자조, 분노와 애증으로 판소리 한 마당을 엮는다.

어느덧 할머니는 소리꾼, 나는 고수가 되어 있다.
인천이 고향이셨다. 초등학교 시절 수업 땡땡이를 치고 맥아더 동상 앞에서 동무들과 뛰어 놀았던 대목에서는 "하이고. 할매도 보통 아니셨네요",
좋았던 시절. 잘나가던 남편 자랑에는 "야... 그래서요. 할아버지 인물이 좋으셨나보다"
돈 떼먹고 죽은 시누이 남편과 지난 6년동안 교류가 없는 외동아들 내외 흉을 보실 때는 "저런.... 고얀 놈이 다 있나" 추임새를 넣으니 웃다가 훌쩍이다 역정을 내기도 하면서 지난했던 질곡의 일흔 네 마당를 풀어놓는다.

"한 잔 더 줘 봐. 여기서 막걸리 살라믄 한참 가야돼. 막걸리는 서울 막걸리가 역시 맛있어."
"그럼요. 여기... 안주도....."
"오늘 자고 가나? 어디서?"
"아뇨. 해지면 돌아가야죠. 그냥 바람 쐬러 온겁니다."
"자고 가지 저어기 카페있잖아 거기서 민박도 하는데... 주인이 김포사람이라는데 내외가 4년 전에 왔어 근데...."
"그렇구나. 저는 오늘 가야죠. 저 꼬맹이 가족이 같이 가자고 해서 온 거예요"
"이따 우리집 가볼래? 이뻐. 돌배나무도 심어놓고.. 무지 커. 그거 술 담그면 좋은데... 연못도 만들어 놨거든. 내가 오늘 아침에도 잡초 맨다고...하이고 맨날 어째 그리 키가 크는지 ... 내가 또 꽃을 좋아하거든..."

"지금 안가시려구요? 가야된다면서요"
"거 한잔 더 줘봐. 이제 뭐 그냥... 좀 더 있다가 같이 온 저 사람들 물에서 나오면 우리집에 가. 우리 밭에 상추 좀 뜯어가. 물 안주고 키운 거라서 맛나. 잘 시들지도 않어. 농약도 안뿌려. 양배추도 몇 포기 있을텐데... 근데 대파는 조금밖에 줄게 없어. 올해 대파는 병이 돌아서 하도 농약을 많이 쳐서... 근데 우리 밭 대파는 농약 안쳤어. 다 그래. 여기 사람들 지 먹을 거 팔 거 따로 키워."
"아이고. 할매 드셔야지요. 괜찮습니다."
"아냐. 혼자서 얼마나 먹는다고... 시내 나가면서 상추 뜯어서 의원, 철물점 다 나눠주는데 뭐"

기어이 당신 집으로 데려가서는 상추며, 양배추, 대파까지 한 무더기씩 뽑아주신다.
"이리 와봐 이거 무쇠솥이야"
"야 두개씩이나... 기름칠이 반들반들 하네요. 이 아궁이는 언제 쓰시는 겁니까"
"가끔 친구들 오면 때지. 좋아해"
"그렇겠네요. 여기다 밥 지어 먹으면..."
"그럼 언제 또 와. 여기 밥 해먹고 해. 저 계곡에 고기도 얼마나 많다고... 우리집 오면 되지."
"예 예. 또 오게 되면 인사드리러 올게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아니. 언제 저 할머니와 그렇게 친해지신 거예요. 야... 저 많은 상추며 대파.... 양배추는 두 포기나 주셨어요."
"그러게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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