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성훈 Aug 25. 2021

무릎과 무...  아니 사실과 진실 사이

백팩을 메고 다닌다. 3개째이니 꽤 오래전부터 일이다. 정장에는 아무래도 백팩이 안째인다. 드문 일이지만 나는 슈트를 입을 때도 백팩을 맨다.
백팩을 좋아하는 건 손의 자유를 얻을 수 있어서다. 딱히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시계추처럼 흔들거릴 뿐인 손의 자유다.
자유는 그만큼 소중하다. '착각도 자유'라는데 생각의 자유는 더 말할 나위 없다. 사람은 먹고 자고 생각한다. 생각하다 먹고 배가 꺼지면 다시 생각하다 먹고 잔다.

가끔은 싸기도 한다. 쌀 때만큼 생각하기 좋은 시간도 없다. 그래서 아래로는 싸고 위로는 생각한다. 생각은 원래부터 허공을 떠돌아서 그런가보다. 생각이 자유이니 판단도 자유다. 그런데 판단이 행동이나 말로 옮겨질 때부터는 양상이 바뀐다. 거기에 책임이 따라 붙는다. 행동의 책임, 말의 책임은 생각보다 무거울 때가 많다. 그 책임때문에 신체의 자유를 구속당하기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생각의 오작동은 병증이지만, 오판은 병이 아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오판의 상당수는 사실과 진실을 헷갈리는 데서 온다. 역사 속 시실이라는 것도 실은 기술한 사람이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역사 속 진실은 오리무중이라고 보는 게 맞을 지도 모르겠다. 역사학자들이 말하는 전제다. 시간을 거슬러 돌아갈 수 없어서다. 설사 돌아간다 하더라도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사건이나 사람의 진실에 얼마나 근접할 수 있을 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사실을 통해 진실에 접근한다. 사실이 진실 그 자체인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만나는 대부분의 사실은 진실을 에워싼 거죽이거나 오물이 묻어 있는 상태다. 그 오물은 주관, 편견, 시각등 사람의 한계일 때가 많다.
그러니 우리는 사실과 진실을 혼동해서 생각하거나 말해서는 안된다. 사실을 사실에 불과하다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거나 주장해서는 더욱 안된다는 말이다.
사실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다. 사람들 입을 오르내리는 많은 이야기, 아니 대부분은 사실에 불과하거나 사실 근처에도 못미치는 것들 뿐이다. 시국이 하수상하다보니 언감생심 진실은 꿈도 못꾸고 사실 파악마저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예전에는 언론이 그나마 사실을 가리키는 방향타 구실 정도는 했던 때가 있었다. 잊혀진 계절, 잃어버린 시간이 되고 말았다.
2021년 우리는 사실의 양극단에서 찢어질듯 볼륨을 키운 메커폰 사이를 오간다.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호외를 던져주는 신문팔이 소년은 사라진 지 오래다.
한국의 언론은 거짓과 가짜, 왜곡과 과장으로 떡칠한 채 호객행위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거기에 사통팔달로 뚫린 인터넷 환경은 우리를 더욱 혼란에 빠트린다. 조간신문 날아오듯 톡이 울리고, 손바닥 위에 올려진 모니터 안에서 악다구니를 쓰고 음모론을 퍼뜨린다.

적어도 한국 언론이 사실과는 결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현실이다. 사실은 가까이 다가서기 보다 멀리 떨어져있을 때 잘보이는 특징이 있다. 무슨 수를 써도 한국 언론이 최근 몇 년간 신뢰도 세계 꼴찌를 구가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언론이 그토록 부르짖는 '언론의 자유'를 향유하면서 이룬 성과라는 게 놀랍다.

이런 사회 환경 속에서 우리는 점점 가짜인 사실과 거짓인 사실을 구분하기 힘들어진다.
진실은 언급하기 조차 힘들어졌다.
어쩌면 진실이라고 믿는 것조차 진실이 아닐 때가 있다. 진실인 자신의 이야기라도 듣는 상대, 장소, 시간에 따라 다르게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정신분석학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의 기억마저 왜곡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런데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말하는 것도 모자라 강요하는 사람을 만나면 피곤하고 한심하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나도 사실과는 떨어져 있는데 마치 자신은 진실이라도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니 말이다.
인정할 것부터 인정하는 게 스스로를 자유롭게 한다. 사실은 진실과 다르다. 사실에는 거짓이 묻어있을 수도 있고 사실을 정확히 아는 것만으로 대단한 일이다.

손의 자유를 위해 백팩을 메는 것처럼 생각의 자유를 위해 그 정도 자각은 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제말 남의 말에 딴지 걸 궁리 하지 말고 제 얘기나 제대로 하자는 말이다. 당신에게 하는 말이고 내게도 들으라는 말이다.

#사진은_본문과_1도_상관없음

작가의 이전글 요즘 늙은 것들은....6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