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쯤은 가지고 싶은...

by 문성훈

연장 계속된 음주로 해장국이 필요했다. 왠일로 자장면이 당겼다.
단골 중국집으로 방향을 잡았다. 아뿔싸 주인장이 다리 수술을 받아 한동안 영업을 못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그러고보니 지난 주에도 봤던 문구다.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주방장인 사장의 부재는 영업종료을 뜻한다.

발길을 돌려 다른 식당으로 향한다, 대구 뽈다구탕을 먹어야겠다.
술 마신 다음날은 대구 지리탕이 그만이다. 탕이 나오고 나는 으레 그래왔던 것처럼 식초를 부탁한다. 물메기탕이나 북어국처럼 살이 무른 생선이거나 밍밍한 지리탕에는 식초를 둘러쳐서 먹는다. 안먹어 본 사람, 적응이 안되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그 맛은 각별하다. 이런 습관은 선대에 물려받은 유산이다. 선친은 늘 이렇게 식초를 쳐서 생선지리탕을 드셨다.

출근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가로수를 둘러친 방충망이 의아스러웠다.
방충망이 아니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은행 열매를 모으기 위해 고안한 아이디어다. 인간이 필요에 의해서, 관상용으로 옮겨 심은 가로수의 자연스런 종족번식조차 인간의 선호에 따라 제어하려는 오만함에 거부감이 든다.
은행나무는 수천년을 산다고 했다. 은행나무는 1문 1강 1목 1과 1속 1종만이 현존하는 식물이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없다. 독고다이 저 혼자 수천 수만년 고생대부터 살아남은 빼진 종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벚나무만큼 가로수로 많이 심는 나무다. 생명력이 강해 공해에 강하고 자체에서 뿜어나오는 독성으로 벌레가 가까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리가 수월하고 오래 산다는 말이다.

인간의 편리에 의해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는 수만년의 족보을 가진 유서깊은 나무지만 이제는 멸종위기 종이다. 가로수로 심어질만큼 흔하게 보이는 나무가 멸종위기종이라니 뜨악하다. 야생종이 그렇다는 말이다. 자연번식은 수정을 시켜주던 매개 동물인 공룡등이 멸종하면서부터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특이하게도 은행나무는 암수가 있다. 자연의 섭리에 충실한 식물인 셈이다. 그러니 열매가 떨어지는 나무는 암컷이다. 암컷인 걸 보니 오래 전 심은 나무거나 무심코 옮겨다 심은 것이 분명하다. 수령 15년이 지나야 분별되던 암수 구분을 지금은 DNA감별법으로 어린 묘목에서부터 구분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수나무만 심는다고 했다. 그마저도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은행열매는 일식 꼬치집의 주메뉴다. 많이 먹어서 좋을 것은 없다고 했다. 독성은 열에 의해서도 제거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 독성 때문에 병충해를 입지 않는다.아이러니하게도 인간에게는 그 독이 징코민이라는 약의 재료가 된다.
은행나무는 독립수다. 저희들끼리 어울려 숲을 이루지 못하고 혼자 자라는 나무다. 우리가 흔하게 보는 오래된 은행나무는 대개 암나무다. 근처의 수나무에서 꽃가루가 날려와야 하는데 없다면 청상과부로 평생 자식 한번 못본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이제는 수나무가 번성할 테니 마찬가지 신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외로운 나무다. 어떤 다른 생명과도 더불어 살지 못하고 오래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긴 생명력은 그 대가로 외로움을 지불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오래전 ‘은행나무침대’라는 영화가 있었다. 은행나무로 침대를 만들수도 있구나 혼자 생각했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다지 신빙성이 없을게 분명하다. 은행나무는 성장이 느리다. 이해타산이 밝은 가구업체에서 동남아를 비롯한 열대지방에서 속성으로 자라는 나무들을 두고 굳이 은행나무로 침대를 만들리가 없기 때문이다.
굳이 누군가 은행나무로 침대를 만든다면 재질은 무르지만 복원력은 뛰어나고 무엇보다 나무결과 나이테 무늬가 촘촘하고 아름답기에 한정적으로 고가에 만들었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침대가 은행나무인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천년을 넘나드는 사랑, 못다이룬 연인의 환생을 상징할만한 침대의 소재로서 은행나무만한 서사를 가진 나무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은행잎은 사랑의 하트문양을 닮은 것도 같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다른 가구라면 모르겠지만 침대로 만들지는 않을 것 같다. 그 아름다운 문양이 매트리스나 침대보로 가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만약 오래된 은행나무침대가 있다면 그래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구입할 수 있다면 나는 그 침대를 구입할 것이다. 이야기거리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집안의 가구를 실용적이고 미적인 기준을 우선해서 고른다.
그런데 친정 어머니가 물려주신 2단 옷장, 뒤주, 할아버지가 쓰시던 책갑(책을 넣는 상자와 비슷한 일종의 책꽂이)이나 경상(앉은뱅이 책상)을 신주단지 모시듯 고이 보관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에 와서는 오래된 오리지널의 가격은 무척 고가다. 스토리텔링이 있어서다. 그 유물 같은 가구에 담긴 서사가 높이 평가받기 시작한 것이다. 하기야 주막집 주병으로 쓰임직했던 백자가 수천만원에서 억대를 호가하는 시대가 아닌가.

나는 집이든 매장이든 이렇게 스토리가 감긴 소품 하나 정도는 가져다 놓기를 권한다. 100년 남짓한 삶을 사는 인간의 애틋하지만 부질없는 염원, 간절한 소망을 담을만한 것 중에 그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만이 아는 내밀한 사연, 오랜 이야기를 품은 가구 하나쯤은 사치를 부려봄직하다. 내게 은행나무 침대가 수중에 들어온다면 나는 시집가는 딸에게 물려 줄 것 같다.
딸을 낳으면 마당에다 오동나무를 심던 선조의 심정으로,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마당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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