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한 생물

by 문성훈

고등어는 값 싼 생선이다. 아니 오랫동안 그래왔었다. 지금은 가격도 만만찮을 때가 있고, 노르웨이산이 대부분이다.

자주가는 식당 주인할머니께 여쭤보니 국내산이 오히려 ‘모타리(덩치)’도 작고 빈약하단다.
어쨌든 서민의 식탁을 풍요롭게 하고 단백질을 공급하는 고마운 생선이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 배에 오르자마자 죽는 ‘치’자 항렬의 생선들 갈치, 멸치, 삼치처럼 산채로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고등어 회는 비싼 편이다.
흔히 고등어가 비리다고 하는데 염장한 것을 굽거나 갖은 양념으로 쪄서 먹는 걸 즐겨서 그런지 나는 거부감이 없다.

내가 고등어를 조금은 특별하게 먹어본 경험은 터키 이스탐불에서였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서 맛봤던 ‘고등어 캐밥’이 그것이다.
한국인에게 유명한 에밀 아저씨 캐밥을 먹으러 어떤 날은 다리를 걸어서 건너거나 혹은 페리를 타고 동서양을 넘나들었다. 내가 순전히 한끼 식사를 위해 이동한 가장 멀지만 가까운 기록이다.
캐밥의 맛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잔가시 하나 놓치지 않고 발라내는 현란한 족집게질이 예술이라고 느꼈었다.

자주 가는 용산 삼각지 부근의 고등어구이 집이 있다. 지하철로는 5구간인데 시간 여유가 있으면 부른 배도 꺼트릴 겸 걸어서 돌아온다. 동서양의 넘나들던 스케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리다.
그 고등어구이집은 할머니가 연탄불에 고등어를 굽는다. 고른 불에 익히면서 기름이 빠지고 불향이 은은한 고등어의 맛은 일품이다.

최근에 사무실 근처에 또 한 곳을 개척했다. 메뉴는 역시 고등어구이 정식이다.
그런데 사뭇 다르다. 오븐에 구운 고등어가 얌전히 누워있는 자태는 단아하다. 일식을 전문으로 하는 집이라서 그런 것 같다. 고르게 익힌 것이 탄 자국이 군데군데 보이는 할머니의 연탄고등어와는 차별이 된다.
물론 고등어정식에 딸려 나오는 밑반찬의 가짓수나 양념의 농담은 할머니집을 능가하지 못한다.

할머니집에서는 김치콩나물 국이나 시레기국이 반드시 나오는데 맛은 둘째치고 일식집의 미소된장국은 오래 놔 둔 미숫가루 푼 물처럼 가루와 액체가 분리된 비주얼부터 썩 내키지 않는다. 떠 있는 것 같기도 가라앉은 것 같기도 한 깍뚝 썰은 두부는 왠지 초라해보이기까지 하다.
아무래도 된장국과 날 것 향이 가시지 않은 쪽파의 앙상블은 갓 쓰고 구두 신은 것처럼 어색하다.
그래도 고등어 구이의 맛은 훌륭하다. 연탄고등어보다는 더 촉촉하고 딱 맞춤으로 적당히 익혀졌는데 오븐의 알람이 그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가장 차이점은 뼈가 발라져 있다는 점이다. 이스탐불의 추억과 한국의 맛이 일식집에서 만나는 순간이다.
동서양 교류의 장이 입안에서 펼쳐진 것이다.

작고 깔끔하게 추린 상을 받고 한입 한입 음미하며 그제서야 가게 안을 꼼꼼히 살핀다.
출입구 가까이 놓인 계산 포스위에 무쇠 솥뚜껑만한 파란 접시가 걸려있다. 혹시나해서 직원을 불러 물어보니 스피커가 맞단다.
그러고보니 작게 음악이 깔리는데 길고 다소 협소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차 있어 대화소리에 미처 듣지 못했다.

긴 장방형의 평면을 따라 긴 바 형태로 구성된 주방은 무엇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게 각종 주방 도구와 후트로 꽉 들어찼다.
조리대 위에 가지런히 꽂힌 식도 셋트가 주인장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다. 기름때에 찌들기 마련인 오븐 근처나 가스대 주변도 나름 애써 청소한 흔적이 역력하다.

우리 일행은 바에 나란히 앉을 수 밖에 없었다. 4인용 테이블은 서너개에 불과하다.
역시 좁고 긴 공간의 영향일 게 분명하다. 그렇다보니 포갠 접시와 작은 냄비까지 코앞에 있다. 일부러 그랬는지 음식을 담은 쟁반 크기와 바의 폭이 한치 어김없이 딱 들어 맞다.
서빙하는 직원이 약간씩 비스듬히 지나다녀야 하는 동선이 불편할 듯도 보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어깨 폭을 감안한 1인의 적정한 동선 폭은 80Cm정도다. 오가는 두 사람을 감안한 일반적인 복도 폭은 보통 120Cm 가 기준이다. 서로 마주보고 오다가 무의식적으로 아주 살짝 비틀며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막힌 카운터로 진입하는 출구는 더 좁아도 된다. 어깨 아래 허리 폭이 기준이 되어서 그렇다.

누가 주인장인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개방된 주방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앞에 둔 공원들처럼 절도 있게 자기 몫을 하는 직원들 모두가 젊은 걸로 봐서는 주인장 역시 젊은 사람일 것이다.
작은 규모의 식당은 한 사람이 감당하는 몫이 크다. 카운터라고 할 만한 독립된 공간도 포스 아을를 지키는 별도의 인원이 없는 것을 봐도 짐작 가능하다. 주방장이 곧 주인장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 식당에서 내놓는 고등어구이와 가게 분위기 그리고 직원들은 무척 닮았다. 일체화는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이런 집에서 막걸리를 바라는 건 어리석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메뉴판을 본다. 역시 없다. 별수없이 사케를 시킨다.
300mm작은 사케병과 작은 잔, 그보다는 큰 막걸리 병과 사발이 테이블에 놓인다면 무언가는 치워야 할 상황이다. 게다가 신선도를 우선시하는 일식당에서는 유통기간이 짧고 보관일수에 따라 맛이 변하는 막걸리는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어쨌든 괜찮은 식당 한 군데를 알게 됐다. 맛있는 저녁식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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