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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Nov 19. 2021

곰탱이

“곰이 보일 겁니다. 이제 보이시죠? 작은 아기곰이 양팔을 벌리고 있습니다. 아주 귀엽죠? “
곰바위라고 했다. 선장의 상세한 안내에도 내게는 바위일 뿐 아무리 봐도 곰이 안보인다. 애써 곰돌이 푸를 떠올려야 그제서 비스무레한 형체로 보일 뿐이다. 바다 위에 떠있는 바위들마다 이름이 붙여져 있다. 누가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지만 전설과 함께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동일인이 아닐 수도 있다.

사람의 뇌는 스스로 논리와 규칙을 찾기 위해 동기화된 기계라고 한다.
아이들이 뭉게구름에서 의미를 찾아내어 동물의 이름을 붙이거나 무수히 흩어져 있는 별들을 이어 별자리와 전설을 만드는 것들이 그런 예다.

미세한 물방울 입자가 빛을 분사하고 굴절시키는 현상에 불과한 무지개를 두고도 이런 저런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사막에 신기루는 있어도 무지개가 뜨는 일은 없다. 비도 오지 않고 건조하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또 다른 단서를 찾고 의미를 추정해 본다.
당연히 울릉도에는 곰은 없다. 멧돼지도 고라니도 없다. 덩치 큰 동물이 없었으니 곰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투영된 것인지도 모른다. 해가 되는 동물이 없으니 아기 곰이 그럴듯 하다. 뱀도 없다. 들쥐는 많다. 언젠가 뱀을 풀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다 죽어버렸다고 한다. 향나무와 약초들 그리고 땅이 뱀을 번식하지 못하게 했다는 심증만 있다. 그래서 숲길을 마음껏 걸어 다닐 수 있다.
울릉도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제주도에 캠핑을 갔다가 뱀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에게 섬은 뱀이 없는 곳이어야 마땅했다.

우리는 사소하거나 아주 우연한 사건들에 기반해 추정과 가설을 만들어 낸다.
이 추정과 가설이 아주 비관적으로 흐르면 피해망상이고, 부풀려서 대단한 것처럼 여기면 과대망상이다.
그런데 일부러 의미를 만들어내고 왜곡, 과장시켜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고 남들을 속이려 드는 것은 정신과적 영역이 아니다. 비루하고 허접한 개인이나 조직의 습벽에 불과할 뿐이고, 처벌은 어렵지만 근절해야 할 범죄행위다.

그런데 육지에는 손바닥에 왕자를 새겨서 왕이 되려는 곰탱이와 무지개로 상상의 나래를 펴는 기레기가 산다. 천상 깐부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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