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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13. 2022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수많은 파지를 낸다고 들었습니다. 파지가 아니면 지우개 똥이라도 수북히 쌓인다는 겁니다. 파지와 지우개 똥은 작가의 살점이고 뼛가루일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노트북을 쓰는 작가에게는 이 고통과 실수의 흔적이 남질 않습니다. 그 기억이 차가운 하드디스크 철덩어리 안에는 남아있을런지. 작가로서는 왠지 서운할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디지털화 되지 못한 아나로그형 인간입니다.

연식이 오래되다보니 사회에 나와 캐드를 배웠지만 끝내 익숙해지지않아 아직도 손 도면을 칩니다. 굳이 변명을 대자면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각조차 디자인의 매력으로 다가왔고 거기에 급한 성정이 한 몫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손으로 그림을 그리면 컴퓨터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장점이 있기는 합니다. 최종 확정된 짙은 선 아래에 조금 삐뚤거나 잘못 그어진 흐릿한 선들이 꿈틀거리며 생동감과 활기를 불어넣는 겁니다. 과장하면 아우라같은 게 느껴집니다.

르꼬르뷔지에의 낙서같아 보이는 드로잉이 그렇습니다. 그의 돼지 꼬랑지처럼 말려 올라간 무심하고 투박한 계단 드로잉에는 그가 지샌 밤만큼의 계단판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의 뇌 주름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깔끔하고 완벽하게 떨어지는 프린터 캐도도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입니다.

흔적으로 남은 선들이 살아있는 선을 더욱 두드러지게 하는 것이지요. 시간과 노력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겁니다.


일본에 한국의 김혜자에 비견될만한 키키 키린(1943~2018)이라는 배우가 있습니다. <어느 가족 2018>에서 할머니역을 했으니 낯익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녀가 집을 지으면서 건축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집을 짓다가 설계도와 다른 곳에 구멍을 뚫거나 하는 실수를 하면 바로 알려달라고 말이죠.

그녀는 실수를 서둘러 고치기보다는 실수의 흔적을 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바로 고쳐버리면 실수는 그저 실수로 남지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면 실수는 실수가 아닌 게 된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죠.

그러면서 그녀는 익살스럽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내 얼굴을 보세요. 그건 실수에 의한 작품이라고요 내가 40년 넘게 배우로 살아남은 건 실수를 어떻게든 살렸기 때문입니다."


종이에 그리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든 혹은 집을 짓거나 인생을 살아가는데 실수는 있기 마련입니다. 그 실수가 그저 실수로만 남느냐 아니면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한 과정이거나 새로운 시도를 위한 전기가 되느냐는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순간의 실수를 평생의 상처로 안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수를 저지르고도 실수인줄도 모르거나 알고도 뭉갠다면 실수는 실수로만 남습니다. 지우개 똥만도 못한 그냥 똥인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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