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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Jul 09. 2022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니

베사메무초((Besame Mucho)가 흘러나온다. 거침없이 키스를 퍼부어 달라는 (Kiss me much) 스페인어다. 세태를 감안하면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낯선 여인과 함께 한 자리에서 불러서는 안될 것만 같다.

'그런데 왜 리라꽃이지?' 리라꽃은 라일락이다. 찾아보니 원곡 가사에는 리라꽃도, 라일락도 없다. 인텔리 가수 현인이 불러 유명해졌는데 그 가사에 '리라꽃 향기'가 언급될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원곡을 듣고 번안가사의 리라꽃을 떠올렸던 것이다.

어디 노래만 그런가. 살아가면서 오해과 갈등의 단초가 되는 것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그런데 키스와 리라꽃의 조합은 절묘하다. 라일락의 꽃말은 젊은 날의 초상, 아름다운 언약이다.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키스가 그러하다. 그런데 꽃잎을 씹어 본 사람은 안다. 얼마나 쓴지.

사랑을 갈구하고 연인을 떠나보내는 절절함이 배여있는 노래다. 키스는 사랑의 실증적 행위로 묘사된다.

또 사랑이다. 권력에 분노하는 사람은 권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이다. 돈에 굴욕을 당해 본 사람이 돈에 애착이 강하다. 세상에 사랑이 넘쳐나는 것은 어디에도 사랑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사랑보다 우정은, 친구는 보다 쉬울 것 같기도 하다. 내게는 친구가 몇이나 될까? 많은 것도 같고 적을 수도 있다.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이 친구가 많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사람인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입으로 외향, 내향을 얘기해 본 기억이 없다. 사교성도 마찬가지다.


점쟁이가 아니라도 상대방의 공감을 사기 쉬운 말이 있다. "남들은 외향적이라고 보지만 실은 혼자일 때를 좋아하고 내향적인 것 같은데...?(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부러울 것 없을 것 같다고 하지만 사실 고민이 많지?"라는 식의 말이다.

하나마한 얘기지만 누구나 두가지 모두가 내재하고 있음을 인정 받고 싶으니 동의하기 마련이다. 실은 백인백색이다.


한때 광풍처럼 휩쓸고 간 그 흔한 MBTI도 해보지 않았다.

내가 그 16가지 카테고리 안에 들 리가 없다. 다들 알고 있으면서 '가볍게'라는 형용사로 은근슬쩍 집착을 비켜간다.

정신의학에서 MBTI는 다루지 않는다. 목적 자체도 2차 세계대전 노동자의 성격 유형을 파악해 직무를 맡기려던 것이 시초다. 학계에서 인정하지도 않는데 대중이 심취하고 열광했던 건 그 16가지 중에 어느 것도 단점이나 나쁜 면을 지적하지 않는 이유가 크다. 장점과 가능성만 열어준다.

십자매가 부리로 뽑아주는 새점 운세가 그렇다.


멋진 여자, 이쁜 남자들이 대세다. 멋진 여자들이 떼로 몰려다니며 미국을 누빈다.

나는 하리무의 팬이다. 그의 댄스는 매혹적이고 유려하다.

2003년생, 춤알못인 나를 사로잡는 그가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MBTI가 제 MBTI"라고 했다. 사람은 항상 변하고 나를 단정짓는 MBTI는 없기 때문이란다. 윤종신이 강연을 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진정한 프로는 사유까지도 멋지다. 몸으로, 음악으로 말하는 재능이 부럽기만 하다.


하리무라는 예명이 낯익다. 2000년 즈음 하리수의 등장이 화제가 됐었다. 비슷한 시기 홍석천이 커밍아웃을 했다. 한창 시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최근 홍석천의 뮤직비디오에 동성인 뉴질랜드 주한대사 커플이 출연해서 춤을 췄다. 2019년 한국정부는 최초로 대사의 동성배우자 지위를 인정했다. 곧 부임할 주한미국대사 역시 동성배우자와 함께 한국으로 온다. 그는 사전 방문해서 하리수와 함께 미 대사관 관저에 무지개 깃발을 내걸었다.

나는 열심히 노를 젓는데 늘 바다는 부지런하고 배는 게으르기만 하다.


외향적이라도 친구가 없을 수 있고 사교적이 아니라도 친구가 있을 수 있다.

수십년을 만나도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없는가 하면, 무감하게 지내는 사이인데 친구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식사 시간 전에 자리를 뜨고 싶게 하는가 하면, 몰래 다음 약속을 취소하게 하는 친구가 있다. 대화의 공백에 초조해하지도, 공허한 말장난에 허탈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여기서 친구는 함께 하는데도 자유롭고, 떨어져 있어도 함께 하는 친구다. 적당한 긴장과 거리, 예의와 배려가 과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관계다.  


친구라고 하면 차승원과 유해진이 떠오른다. 어느 예능프로에서 공효진은 차승원에게 "선배님 친구 없으시죠?"라는 물었다가 "하나 있어. 유해진이라고..."라는 대답을 듣고 무척 감동했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차승원은 "내가 그랬었나?"라는 반응을 보였고 이를 지켜보던 유해진은 그저 웃기만 했다. 오래전 인터뷰에서 일찍 결혼해 사적인 친구가 없다고 밝혔던 차승원이다.


짧은 장면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 둘은 반말이 오가지도, 얼핏 막역한 사이로도 보이지 않는다. 되려 서먹서먹, 대면대면한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채워진 공기는 늘 신선하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굳이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느낌으로 알아채고 배려하는, 시덥잖은 농담에도 웃어줄 수 있는...

친구를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온전한 하나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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