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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훈 Mar 05. 2023

하루동안에도

오늘 한 통의 전화를 받고, 한 통의 경고장이 날아들었으며 한 사람을 찾아보았다.


• 한 통의 전화.

어떻게 알게 된 사람인지는 중요치 않다. 기꺼운 마음으로 통화하고 싶으냐 아니면 외면하고 싶거나 벨소리부터 시끄럽게 들리느냐가 문제지. 전자의 경우다. 대개 그런 전화의 목소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금 전화 받기 괜찮으세요?"

일전에 들어서 익히 알고 있던 사건의 후속편이다. 의견을 구한다지만 난들 정답은 알 수는 없는데다 듣고만 있어도 어느 정도는 해소되는 소소한 문제다. 내 마음같은 사람, 터놓고 상의할 수 있는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은 좀 더 살만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고보니 세상살이의 다툼과 고민은 피력이 아니라 경청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웃음으로 통화 마무리를 하고나니 누가 누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누가 누구에게 전화를 한 건지 잠시 헷갈린다. 왜 내 기분이 풀리는 것 같지?


• 날아든 경고장.

뜬금없이 내 페북 피드에 빨간 태그가 달렸다. 《개정 제한》. 뭔가 들어가봤다. 페친 글에 단 댓글이 사단이었다.

① '등신 머저리 한테....' 과한 욕설도 아닌데 한국은 대통령의 절대 존엄을 침해해선 안되는 나라인가 보다.

② '칼을 쥐어줬으니'이란 문장이 문제일 수도 있겠는데, 이전에 수없이 썼던 '총'이란 단어는 되고 '칼'은 왜 안되는지 아리송하다.

아무튼 24시간 동안 그룹활동이 제한된다는데 영장을 받은 것도 압수수색 당한 것도 아니니 다행으로 여길 밖에.....

① 과 ② 를 합치면 문제가 된 "전체 문장"이 된다. (이래도 안돼 AI? 사람일지도...)


• 뵌 적은 없지만.  

페북의 운영전략은 잘 모르지만 나는 적은 페친을 유지하는 것으로 페친 글을 안놓치려는  방침을 고수한다. 그래도 못읽고 지나간 아까운 글이 가끔 눈에 띈다. 그런 지경이니 일부러 이름을 쳐서 방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딱 한 분은 일부러 찾아 들어간다. 일주일 넘게 글이 안올라온다. 최근 갑작스런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다.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아무런 댓글을 안달았었다.

시한부 삶을 사는 어느 젊은 여성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다. 가장 고맙고 기억에 남는 위로는 아무 말 없이 설겆이를 해주고 간 친구였다고 씌여 있었다.


한동안 카르페 디엠 (carpe diem), 아모르 파티 (Amor fati) 그리고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가 '행운의 편지'처럼 여러 피드에 옮겨다닌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세 문장 뒤에는 예리한 비수도 숨겨져 있다.


군대 있을 때, 내부만 뒤에 창고 천막동 하나가 있었다. 그 곳에 알미늄으로 된 관 하나가 있었다. 드라큐라 영화에 나오는 육각 모양이었다.  간 큰 졸병인 나는 그 안에 드러누워 땡땡이를 자주 쳤다. 아무도 거기까지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언젠가는 깊이 잠들어 반나절을 보낸 적도 있다. 그런데 오늘이 될지, 내일이 될지 자다가 세상을 떠날 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두 발 뻗고 잘 수 있었을까.


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오늘에 충실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차라리 그들은 하루하루를 생의 마지막 날처럼 보내기보다 <마지막 잎새 / 오 헨리>에서 떨어지는 잎새를 헤아리는 존시가 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늙은 화가 베이먼이라도 있으니까 말이다.


몽테뉴는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지만 살아있어야 배울 수도 있는 것이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고 상황이 나아질거란 믿음조차 없다면 기쁨은 느낄 수 없다. 쾌락의 즐거움 중 하나는 반복되는 앙코르에 있다.


"메멘토 모리만큼 인생의 즐거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 또 있을까? ..... 현재만 산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매력적이지만 실존적으로 불가능하다...... 철학은 삶을 배우는 것, 특히 유한의 지형에서 다시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는 날들을 위하여 / 파스칼 브뤼크네르 中에서>


아마 이후로도 나는 아무런 댓글을 달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아무리 훌륭한 경구, 어떤 아름다운 말이라도 누군가에겐 아픔이 되기도 한다. 말은 참으로 다루기 힘든 칼이다. 요리를 대접할 수도, 비수가 되어 찌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침묵이 더 많은 얘기를 들려줄 때도 있는 법이다.


사라져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슬픈 일이다. 영원히 글이 올라오지 않는 날이 오면 잊혀질 때까지 기억하는 것으로 마음을 전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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