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어쩌다 공무원' 입성기 1
"박 작가가 공무원이 됐다고? 뭐 정치라도 한대?"
”아니 김 부장이 어찌나 크게 소리를 치던지 ㅎㅎㅎ
박 작가 소식 듣고 놀랐어요. 언제부터 준비한 거예요, 공무원은?"
“준비한 건 아니고 어쩌다 들어오게 돼서... 경력직으로...
계약 기간이 정해져있는 거라 평생할 건 아니고요.”
“설마.... 정치할 생각은 아니죠?”
“ㅎㅎㅎ 제가 그럴 깜냥은 안되죠~~”
“그쳐? ㅎㅎ 아우 깜짝 놀랐었잖아요. 여튼 축하해요, 축하할 일이지?”
시청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난 이PD는 3년만인데도,
어제까지 한 팀이었던 듯 친근하게 굴었다. 이 계통 사람들이 그렇듯,
능구렁이 같으면서도 어떨 땐 피를 나눈 가족 마냥.
"근데, 거기 홍보총괄이면, 무슨 일들을 하는 거예요?"
"아, 아무래도 제가 영상이나 대본은 일반 직원들보다 볼 줄 아니까,
부서들에서 만드는 홍보영상, 대본 중간 컨펌을 하고요....
뭐 보도자료, 각종 기고문, 연설문 쓰고....
대변인실 협조사항은 전부 체크해야 하는 편이에요...
기획기사도 만들죠, 광고 집행에도 관여하고..."
내게 방송광고 목적의 예산이 일부 있다는 사실 확인 후 그의 얼굴에 번진 묘한 미소.
"아 오늘 아주 중요한 분을 만났네!
아니 요새 우리 데스크가 어찌나 압박을 하는지....
알죠? 우리도 돈 되는 사업 따와야 하잖아요..
아니 박 작가도 관련 업무를 맡고 있었구나~ ㅎㅎㅎㅎ"
잠시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모 정치인을 까는 방송 후일담을 잠시 나누기도 했다.
반갑다며 짠돌이 이 PD는 파스타 두 접시에 피자 한 판도 모자라
와인 한 병값을 치르고 또 보자며 힘껏 두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 정치인은 한때 이 시청의 수장이기도 했으니...
잠시 마음에 걸릴 수도 있었겠다.
어차피 그는 이미 감옥까지 다녀온 인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는데... 굳이...
시청 근처 종종 예전 방송국 지인들과 마주칠 일들이 생겼다.
출입기자, 출입PD로 아는 이름이 올라와 있을 때면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현장에서 생생한 소식을 발로 뛰며 찾아가,
심도 있게 취재해 나름의 의미를 찾아
전 국민 대상의 영상을 만들던 기억.
잘못된 사회현상을 바로 잡고, 필요한 제도를 만들고,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던 시절이다.
당시를 떠올리다 사무실에 앉아 한두 장 짜리
보도자료를 쓰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볼 때면,
갑자기 50년 전 후져진 세상으로 훅 떨어진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특히나 이날과 같이 함께 일했던 지인을 만나고 올 때면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내 앞에서 광고 얘기를 꺼낼까 말까 망설이던 그를 떠올리며,
‘그 바닥도 저무는 모양이네.. 종편채널 망한다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망하기는커녕
경쟁사 되고....유튜브다 뭐다 새로운 경쟁 플랫폼 천지이니.... 요새 힘들겠지...’
“아휴, 요새 부장이 어디 광고 좀 따오라고 어찌나 들볶는지 말이야...”
그가 얼굴을 붉히며 흘린 한 마디가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새삼 나는 차라리 유튜브가 뜨기 직전인 2016년
시청으로의 이직이 잘 한 결정이었다는 생각도 스쳤다.
‘저 바닥에서 희망을 찾는 일도 부질 없는 것 같기도 하네....'
그리고는 바로 그 착각에서 빠졌다 나왔다.
스스로를 위로하는데, 이PD의 씁쓸한 표정을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곳에서 좋은 정책 제대로 홍보하는 것도 국익에 이바지하는 일이지,
아무렴. 좋아좋아, 잘하고 있어. 토닥토닥.’
그렇게 저무는 기분과 가라앉는 마음을 다잡고 터덜터덜 퇴근길에 올랐다.
5시 정시 퇴근.
방송국에 다닐 때는 엄두도 못내던 '칼퇴'생활이다.
지하철에 타자마자 시간을 확인한다.
6시 전에는 집에 도착해야 가영이 저녁밥을 제시간에 준비할 수 있다.
지금쯤 어린이집에서 나와 돌봄선생님과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터였다.
시간은 충분하다.
오늘 저녁은 무얼 만들어 줄 지, 행복한 고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