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성 높인다고 저지른 일들 2. 네트워크
* '공무원 겸직' : 공무원은 공직 업무 외 영리 업무에 대한 금지조항이 있음.
- 단, 겸직 허가 기준에 부합한다면 가능한데, 공무원의 직무 능률을 떨어뜨리거나 공무원에 부당한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면 허가되지 않음.
- 보통 공무원 겸직은 해당 업무의 연속성이 있으며, 관련 강의나 자기 계발 차원의 활동은 소속 부서장에 사전 보고 후 홍보부서와 협의를 거치면 가능하다.
법무부 재소자들을 위한 독서홍보프로그램 제작 및 대본 작성 업무는
나의 직무에도 충분히 도움이 되는 활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영리 목적으로 볼 수 없을 만큼 많지 않은 강의료만을 받고 진행했기 때문에 내부 허가가 가능했다.
단 2달에 한번 방송 녹화가 진행되는 날에는
개인적 연가 또는 반차를 사용해 시간을 냈다.
원래는 1년 정도만 경력개발 차원에서 해보려고 한 일이었는데,
우연치 않게(시간상 큰 무리도 안 되는 일정이기도 했고)
기회가 꾸준히 이어져서
약 3년 정도 진행했다. (2018년~2021년)
약 1시간 정도 이뤄진 녹화 시간을 통해 여전히 방송작가와 PD,
카메라 감독 직무로 공직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인연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들과 공공 영영에서의 방송일이 주는 어려움과 보람된 경험을 나눌 수 있었는데,
원래 나의 직무에서 겪는 어려움도 함께 나눌 수 있어 위로가 됐다.
외부인이 공직에 갑자기 들어와 적응하다 보면,
주류에 편입되지 못하고 겉도는 경험을 하게 마련인데,
이처럼 외부이기는 하나 같은 공직사회에서 비슷한 경력직 경험이 있는 이들과의 시간은
공감받는 느낌으로 채워지고,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따뜻하게 오갔다.
어느덧 한 팀이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무렵,
법무부 출입 절차가 까다로워지면서
두 달에 한 번씩 주어지던 나의 기쁨도 사라져 갔다.
같은 공직사회여도 외부에 대한 단절감이 극심해졌던 때다.
녹화일 기준 3일 이내 코로나19 검사를 받아 증명서류를 떼가야 했고,
검문소 통과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무엇보다 어렵게 잡은 녹화일정이
갑작스럽게 취소되는 일들이 늘어가며,
(나에게도 사정이 생기기도 했고)
그렇게 3년간의 겸직생활을 조용히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 경험이 나에게 얼마나 보물 같은 경험을 남겼는지는
대략적으로 상상만 해봐도 어림짐작들 하실 것이다.
대본 작성뿐만 아니라, 짧지만 녹화 과정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방송인으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이어가게 했으니까....
또 공공의 영역에서도 보람되고, 자기계발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긍정 미래를 꿈꾸게도 했다.
(이는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이 실망스러울 때마다 나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여러모로 겸직일을 추천한 작가선배이자 공직선배인 그녀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 :-)
선배는 공직사회 나의 첫 네트워크 제1주자였던 셈이다.
공무원이란 신분으로 법무부 선배뿐만 아니라
방송사에서 만난 동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이전엔 전혀 만난 적은 없지만 건너 건너 얘기만 듣다가
같은 조직에서 만나게 된 후배 아닌 후배들도 몇 있었다.
그녀들과의 만남을 시작으로 나는 공직사회에서의 네트워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ㅎㅎㅎ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느낌적 느낌)
시간이 흐를수록 같은 방송사 경험을 가진 경력자들과는
길게 관계를 이어가지 못했다.
오히려 일적으로 식사를 하다가 친해진 신문방송기자들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같은 작가출신으로 만나 비슷한 업무를 하게 되면,
또 다른 경쟁구도가 형성되기도 하고,
내부에서도 은근히 업무적으로 비교하다 보니 껄끄러운 상황들이 연출되곤 했기 때문이다.
의외로 일적으로 만나는 기자들과의 관계는
쿨하며 따뜻하고, 서로를 연민하기도 했다.
여전히 어색한 공직에 매일 새롭게 적응하는 나는 누구보다
이곳에서 취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어렵다는 걸 이해했다.
기자들의 취재를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도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
거기엔 작가 시절 기자들과 일할 때 이미 익숙해진
그들과의 대화법이 도움됐다. 일을 대하는 마인드가 얼마나 열정적이며 일처리 속도가 굉장히 스피디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 내게 그러한 업무가 익숙하단 걸
이 조직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때문에
나에게 언론협력 업무를 배정했을 테고.
자료를 작성하고, 기고문을 쓰고, 연설문을 다듬는 일도 나름 재밌었지만,
기자들과 소통하는 업무가 그 가운데 가장 보람이 컸다.
(방송국 안에 있을 때는 그렇게 잡아먹고 싶더니, 밖에서 만나니 이리 반가운 거다 ㅎㅎㅎ)
"주무관님~"
(이들은 나를 그렇게 불렀는데, 처음엔 굉장히 어색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적응이 되어 갔다)
"주무관님 방송국 계시다가 여기서 일하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당연하죠~ 안 힘들 수 있나요~"로 시작되는 나의 수다는 지금부터다.
"아니 방송국에서는 문서 보고 없이 데스크랑 딱딱 얘기해서 취재 바로바로 나가고,
오늘 원고 쓰고 내일 편집하고.................
여기서는 어디 외부 취재 한 번 나가려면 보고에 보고에 보고를 하니까요......................"
"아 그리고 땡땡 국장님 아시잖아요..... 얼마나 까다로우신지..... 한 번씩 불려 가면 심장이 떨린다니까요.....
내가 땡땡 방송국 데스크한테도 말대꾸 딱딱했었는데, 여긴 분위기가 정말............ㅎㅎㅎ"
"깔깔깔깔...... 저희도 다를 바 없어요, 요즘은 취재 규정이 까다로워져서........"
종종 그들과 나눈 점심시간은 행복한 추억이 되곤 했다.
매번 일적으로만은 만나고 싶지 않은.
그런 동반자 같은 이들도 있었기에.
간혹 나를 공격하는 입장이 되는 그들이었지만,
나에겐 때로 동료이자 어느땐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시청 근처 맛집에서 서로의 취향을 고려해 즐거운 식사를 즐기고, 티타임을 가졌다.
일적 얘기 뿐 아니라 사적 고민도 나누었다.
일반 행정직공무원들은 이 시간을 괴로워하는 경우들이 많았다.
기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고들 생각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누구보다 영감이 되고,
홍보 기획을 하는데 아이디어를 주고, 동기 부여가 되기도 했다.
시청에서 만난 언론인 누군가의 말마따나 '범언론인'으로써 주는 친밀감이 존재했다.
그냥 말로만 하는 네트워킹이 아닌
사람과 사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
질적으로 풍성한 관계적 네트워킹 말이다.
그러한 관계맺음이 일적인 관계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공무원이 되고 나서야 경험할 수 있었다.
나는 요즘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자주 듣고 나누기도 한다.
마흔이 넘어 많은 이들이 가족, 친구, 사회적 괸계들에서 상처받는 일이 쌓이고 쌓이다 결국 터져버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나이를 먹고 사회적 관계가 넓어짐에 따라
초, 중, 고 시절 나름 찐친이라 불렸던 일부와의 관계(진실하지 못했던 관계들)가 정리되고
사회적으로 만나 보다 친밀해지고 깊숙해지는 네트워킹이 익숙해졌다.
예전의 관계는 가치가 없고, 현재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건 아니다.
단, 사회적 역할과 위치가 달라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멀이지는 관계가 생기고,
반면 더 가까워지는 사이가 되기도 하는 것.
또 이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네트워킹이 반드시 폭넓어질 필요는 없지만,
연차가 쌓이고, 경험이 다양해지면서
관계 맺음은 활발해지기 마련이다. 이에 따라 사고의 영역도 확장된다.
미흡하고 미숙했지만, 이를 공직사회에 발 들이며 알고 느끼게 되었다.
이곳은 의외로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조직인 것이다.
만남과 교류가 내게 미친 이야기는 차차 나누어보고 싶다.
그런 기회가 많은 공간과 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