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0년도 더 전의 일이 되었다. 학력고사를 보러 들어가는 아들의 손을 꼭 잡으시고는 "엄마는 우리 아들 믿는다"라고 하셨던 어머니의 말씀이 기억난다. 그 말씀을 풀어 생각하면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엄마는 우리 아들이 시험을 잘 봐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것이라 굳게 믿는다"가 첫째고, "엄마는 우리 아들이 시험을 어떻게 보든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맞는 대학을 잘 찾아가리라 믿는다"가 둘째일 것이다. 당연히 우리 어머니는 첫째의 뜻으로 말씀하셨을 것이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리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심지어 길 가다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까지 일상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과 신뢰로 맺어지기를 바란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이 설마 묻지 마 범죄의 주인공은 아니겠지?"
"우리 아이는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있을 거야"
"친구가 급히 빌려 간 돈을 갚을 때가 지났는데 알아서 돌려주겠지?"
"회사에서 후배에게 권한 위임을 해줬는데 알아서 잘해 내겠지?"
우리가 누군가를 믿고 신뢰한다는 것은, 내심 그 누군가가 내 뜻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행동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즉, 부모가 자식을 보고 믿는다고 하는 것은, 부모가 원하는 대로 자식이 반듯하게 자라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당당히 살아가리라 믿는다는 것이지, 자식이 어떤 삶을 살아가더라도 무조건 자식의 결정을 믿는다는 게 결코 아닌 것이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길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생각이 다르다면?
자식도 부모와 생물학적으로 연결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독립 개체로 나와 항상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다름을 받아들이고 아이의 생각과 가치관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질 것을 믿는 것은 믿는 게 아니라 강요일 뿐이다. 다만, 궤도를 벗어나는 일에는 과감히 개입해야 하는 것 또한 부모의 의무이다. 정해진 궤도 안에서 자율을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신뢰이고 믿음인 것이다.
얘기를 사회로 확장해보자.
많이 수평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회사나 조직은 엄연한 hierarchy (직급 체계)가 존재한다. 즉, 위로 갈수록 권한과 책임이 동시에 커진다. 그런데, 요즘은 상위 직급자가 책임은 도맡되 권한은 아랫사람들에게 대폭 위임을 하는 추세다. 실무는 아랫사람들이 더 잘 알기 때문이다. 이때도 똑같은 딜레마가 발생한다.
아랫사람을 믿고 권한 위임을 했는데, 내 뜻과는 달리 자기 스타일대로 일을 추진한다면 어떻게 될까? 책임은 고스란히 내가 다 떠안아야 하는데 말이다. 상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본인이 직접 나서서 본인의 입맛에 맞게 일을 처리하든지, 아니면 실력 있고 리더십도 있는 똘똘한 후배를 골라 완전히 권한을 위임하되 결과로 평가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즉, 믿는다는 것은 완전히 권한을 위임하고 결과를 책임져 주는 것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선수들에게 마음껏 플레이하게 하는 대신 결과는 감독이 책임지듯이 말이다. 다만, 좋은 선수들을 뽑고 잘 훈련시키는 것은 감독의 몫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를 떠올려 보자.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은 전경기 모두 승리하며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런데 국민타자 이승엽에 대한 김 감독의 믿음이 이슈였다. 예선 23타석에서 단 3안타로 부진하던 이승엽을 감독은 계속 믿으며 일본과의 준결승에도 4번 타자로 기용했고, 결국 보란 듯이 역전 홈런을 쳐내고 금메달에 기여했다. 김 감독은 이승엽을 그야말로 믿은 것이다. 설령 끝까지 못했더라도 본인이 책임을 지겠다는 뜻이었다.
4서 3경 중 하나인 서경에 이런 말이 있다. '任賢勿貳 (임현물이)', 현명하고 어진 신하에게 일을 맡겼으면 두 마음을 품지 말라는 뜻이다. 즉, 적합한 인물을 선발하여 위임을 했으면 중간에 간섭하지 말고 믿고 기다려주라는 뜻이다.
믿음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진정한 신뢰가 가정에서부터 출발하여 사회로 널리 퍼진다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큰 두려움인 코로나를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모두 눈 녹듯 풀리지 않을까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