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소통을 경험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대화, 직장 선후배들과의 업무 회의 그리고 물건을 사기 위한 온, 오프라인에서의 문의 등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소통이란 테두리 안에서 보내고 있다. 심지어 자기 내면에 숨어있는 이성과 본능 간에도 밀당을 한다.
이 많은 소통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출발점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이다.
과거 부서원들과의 면담 중에, 동료와의 갈등에 대해 토로하던 친구가 있었다. A가 말하기를, B는 고집이 너무 세서 무조건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니 함께 일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내가 취한 행동은 B를 따로 불러 "이런 보이스가 있으니 자네가 고집을 좀 꺾고 양보를 하지"라고 타이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일이 커졌다. 나에게 잔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한 B는 어떻게 알고 A에게 찾아가 왜 부서장에게 얘기했냐며 따진 것이다. 결국 갈등은 증폭되었고 A는 나한테 얘기를 안 한만 못하게 되고 말았다.
여기서 내가 간과한 부분은 첫째 A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A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었고, 둘째 B의 입장도 똑같이 들어보는 것이었다.
모두 알아본 결과, A는 그저 본인의 하소연을 잘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동기부여가 잘되지 않는 회사 생활에 대해 넋두리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B는 A의 수동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의견을 물어도 대답이 없으니 급기야 의사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A와 B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니, 원래 내가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 얼마나 서투른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결국, A에게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적절한 동기부여를 했고, B에게는 A의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선에서 문제를 해결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나는 소통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관련 책도 읽어보았다.
무더위가 한창이던 작년 여름 고3인 딸아이가 밤늦게 귀가해서는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더워 죽겠는데 하루 종일 마스크 쓰고 있으려니 너무 힘들어."
그 얘기를 듣고,
나는 학교에 냉방은 잘되고 있는지, 환기는 잘하고 있는지 등을 캐묻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아차 싶어 그만두었다.
또 자기 주도적 소통의 습관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냉장고에서 시원한 수박을 꺼내 쓱쓱 잘라주고, "어이쿠 우리 딸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네, 시원한 수박 먹고 힘내자~~!!"
딸아이에게 필요한 건 주도면밀한 문제 해결사가 아닌, 그저 넋두리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사이다 같은 아빠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