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어딘가를 운전하고 갈 때 빨간 신호등에 걸리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다. 마음은 다음 교차로를 향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러지 못하니 말이다. 그래서 신호등이 파란색으로 바뀌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럴수록 시간은 참 더디게 간다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이 마치 몇 시간은 되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반면 정 반대인 경우도 있다. 전날 과로와 회식으로 지친 상태에서 아침 일찍 운전하는 것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그럴 땐 제발 빨간 신호등에 걸리기를 기도한다. 잠시라도 눈과 온몸을 감싼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게 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그럴 때일수록 신호등은 온통 파란색 일색이다. 쉼 없이 달려야 한다. 참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흔치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어떤 일을 쉼 없이 해야 할 때는 뜻하지 않은 방해물들에 가로막혀 본의 아니게 쉬어가야 하는 반면, 정작 쉬고 싶을 때는 어쩔 수 없이 계속 달려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신호등 색깔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달리고 싶을 때 달릴 수 있게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건 불가능하다.
현실의 신호등 색깔을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만의 신호등을 마음속에 하나씩 가져보는 건 어떨까. 내 삶의 시간과 속도를 내가 제어하고 계획할 수 있게 말이다. 이것이 곧 모두가 꿈꾸는 자기 주도적 삶의 시작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주기적으로 바뀌는 신호등 색깔에 맞춰 하루를 살아야 하고 또 그런 삶이 영원히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달리다 지칠 때면, 가끔씩 들어오는 빨간 신호등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나만의 신호등을 삶의 한복판에 높이 세우고 빨간색과 파란색을 번갈아 번쩍 거리며 인생을 활보하는 나 자신을 그려본다. 언제 바뀔지 모르는 신호등에 내 시간을 맡겼던 어제와는 많이 다른 내일이 펼쳐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