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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Jun 10. 2021

20년 전 프러포즈에 대한 추억

결혼 20 주년을 기념하며

20년 전 오늘, 그러니까 2001년 6월 10일에 우리 부부는 백년가약을 맺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지 불과 석 달만에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고 바로 예식장 예약부터 했다. 물론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무언의 허락을 받은 상태이긴 했지만 인사도 드리기 전에 예식장 예약부터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용감했던 행동이었다. 그 용감함 뒤에는 의외로 단순한 이유가 있었다. 마음에 두고 있던 예식장이 인기가 좋은 터라 일찍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통과의례들 즉 양가 상견례,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기, 그리고 혼수 준비와 신혼 여행지 선정 등 모든 결혼 준비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물론 그중엔 가장 중요한 신혼집 구하기도 포함되어있었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몇 달 안에 가능했던 이유는 서로 간에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만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은 남녀에게 무슨 사랑과 정이 그리도 깊었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 이유를 굳이 찾자면 우리가 처음 만난 때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겠다.


출처: Pixabay


우리는 결혼 한 해 전인 2000년 8월 말에 처음 만났다. 나는 보잘것없는 집안이긴 하지만 3대 독자라 부모님의 결혼에 대한 기대가 컸었고, 와이프는 오빠가 있긴 했지만 외동딸로 더 나이 차기 전에 시집을 보내시려는 장인, 장모님의 의지가 강했었다. 이렇게 우리는 결혼이라는 뚜렷한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만났던 것이다. 나는 갓 서른을 넘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제대로 된 연애 경험이 없었고, 와이프도 많이 다르지 않아 보였다.


짚신도 짝이 있고, 인연이 다 따로 있다고 했던가? 나는 와이프를 처음 봤을 때 마음의 결정을 했다. 바로 이 여자구나. 내 인연이 여기 있었구나. 이유는 정확히 묘사하기 어렵다. 굳이 말하자면 분위기 있고 교양 있어 보였으며 무엇보다 대화가 잘 통했다. 어딘지 도도해 보이면서도 나보다 네 살이나 어린 데서 오는 귀여움이랄까? 좋아하면 모든 게 예뻐 보인다고 그렇게 나는 나의 인연을 만나고 있었다.    


그런데, 고민이 생겼다. 어떻게 이 사람을 내 여자로 만들 것인가? 그냥 좋아하니까 결혼합시다 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와이프는 처음엔 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내가 자꾸만 만나자고 하니까 마지못해 만났단다. 그렇게 몇 번인가 만났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승부수(?)를 던졌다. "솔직히 나는 당신이 마음에 들어서 결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당신 마음은 어떤지 잘 모르겠네요. 지금 결정하란 얘기는 아니니까 다른 남자들도 많이 만나보고 그래도 내가 좋으면 그때 나와 결혼합시다."  


나의 말을 들은 와이프의 표정은 '이 남자 도대체 뭐지? 뭔데 이렇게 큰 소리를 칠까? 이 자신감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렇게 얘기하는 듯 보였다. 비교적 순탄했던 우리의 만남은 내가 던진 승부수로 인해 한 동안 소원해졌다. 그렇게 한 보름이 지났을까? 와이프한테 전화가 왔다. 만나자고.  

그렇다. 나의 승부수가 통했다. 와이프는 나의 프러포즈에 수줍게 ok를 했다. 비운만큼 채워진다고 했던가? 마음을 비우며 띄운 승부수가 완벽히 통한 것이다. 우리는 의기투합이라도 한 듯 바로 결혼 준비에 들어갔다. 나중에 와이프에게 들었는데 그때 승부수를 던지던 내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모습에 반했다고.


20년 전 결혼식 사진


이렇게 우리는 부부가 되었고 20년 동안 아들, 딸 낳고 집도 장만하고 각자의 일도 열심히 하며 살아왔다. 물론 우리라고 왜 굴곡이 없었겠나? 20년 중에 초기 10년을 주말부부로 살았던 우리는 결혼 후에 오히려 대화할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오해도 있었고 많이 싸우기도 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배기라고 하지 않았나? 그저 배고 또 배 봤자 물은 계속 흐를 뿐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와이프에게 정말 고맙다고 고생 많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늦깎이 대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며 가장 역할까지 했던 와이프였다. 지금 또 다른 출발을 하려는 우리 부부의 앞날에 행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열심히 한 노력에 대한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20년 전 승부수를 던지던 그 초심을 잃지 않고 남편으로, 아빠로 든든한 기둥이 되도록 더욱 노력해야겠다. 앞으로 또 20년이 흘렀을 때 오늘을 다시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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