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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Jul 04. 2021

아빠에게 미술 DNA가 있었다!

한양 도성 순성길 그리기

작년 봄 아들과 함께한 추억을 떠올려보았다.


아들과 한양 도성 순성길 중 남산 구간을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한 오랜 집콕 생활 끝에 잠시 맛본 콧바람이었다. 힘든 코스였지만 아들과 함께 일상의 소중함을 공감하고 서로의 땀 냄새로 소통하는 의미 있는 동행이었다.  


장충단 공원을 거쳐서 국립극장을 통과하니 본격적으로 남산공원으로 향하는 계단이 보였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매우 가파른 계단이었다. 평지로 돌아가는 길도 있었지만 이왕 가기로 마음먹은 거 직선거리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남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


이런 가파른 계단 길이 거의 1 km 가까이 이어졌다. 일찍 찾아온 초여름 날씨에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마스크도 예외가 아니었지만, 끝까지 벗지 않았다. 안전을 보장한다면 조금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정상인 남산 타워까지 올라갔다.


집에 와서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남산 공원 올라가는 계단을 찍은 사진 유독 눈에 띄었다. 너무 가팔라서 힘들었기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그 길을 한 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탭이 되는 새 노트북도 장만했겠다 디지털 드로잉 체험 차원에서 그려보았다. 디지털 드로잉은 마음대로 지우고 다시 그릴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었다.    


디지털 드로잉으로 그린 '남산 공원 가는 길'


거의 서너 시간 꼼짝 안 하고 집중한 끝에 이렇게 완성되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림이란 걸 그려봤다. 옛날 초등학교 시절 고궁에 사생대회 겸 소풍 가서 김밥 먹으며 그리던 시절 이후 이렇게 제대로 그린 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열심히 그린 후, 두 분 전문가 (?)에게 평가를 받아 보았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예고 3학년인 첫째와 예술의 전당 어린이 미술 영재 아카데미 출신 둘째의 사심 없는 심사가 시작되었다.


이게 뭐라고 내 생전 아이들 앞에서 긴장해 보긴 또 처음이었다. 이 순간만큼은 아빠가 아닌, 심사위원 앞에서 숨죽이며 결과를 기다리는 오디션 참가자일 뿐이었다. 매의 눈으로 유심히 쳐다보더니 둘이 뭔가 의견도 주고받는다. 분위기를 보니 결과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아이들이 그림에 대해 토론을 하는 데 뭔가 전문가의 필이 느껴졌다. 평소 말 안 듣는 개구쟁이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아빠의 그림을 놓고 팩트 기반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1점 투시가... 여기 이렇게... 원근이 여기는 잘되어 있는데..." 등등.  그림자의 진하기와 크기, 나무의 채색 등 몇 가지 코멘트를 줘서 보완까지 했다.


우리 부부는 모두 이과 출신이며, 엔지니어로 일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큰딸은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심취해서 결국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올해 드디어 미대 디자인과에 입학하였다. 취미가 전공이 된 샘이다. 작은 녀석도 그림 그리는 누나를 보고 자라서 그런 지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심지어 달랑 연필 몇 자루 들고 가서 치른 예술의 전당 미술 영재 아카데미 오디션에 덜컥 합격해서 2년이나 다녔다.


과연 아이들의 미술 DNA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리 부부는 적잖이 신기해했다. 양가 집안을 사돈에 팔촌까지 뒤져봐도 미술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저 돌연변이겠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드디어 그 DNA의 출처를 알았다.

거의 40여 년의 공백이 있었다는 전제하에, 이 정도 그렸다면 미술 DNA 가 있는  맞는 것 같다.

오랜만에 가족회의는 다수결이 아닌 만장일치로 결론을 채택했다. 아빠가 그림 좀 그리는 걸로.


아이들의 미술 DNA에 대한 궁금점을 풀었을 뿐 아니라, 나만의 힐링 노하우도 발견한 의미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모쪼록 좋아하는 일, 잘할 수 있는 일을 업으로 삼아 평생 즐겁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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