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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Dec 11. 2021

내 친구 한강

퇴임하고 다시 출근하기까지 지난 2년간 내가 가장 자주 간 곳은 한강이었다. 특히 봄, 가을에는 거의 매일 간 것 같다. 집에서 반포 한강공원에 도착해서 한강을 따라 걷다가 세빛섬을 돌고 다시 집에 오면 만보 걷기가 완성된다. 거리로는 8킬로미터가 조금 넘는다. 나의 아지트도 몇 곳 생겼다. 수상택시 승강장에서 한남대교 쪽으로 좀 걷다 보면 한강을 바로 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낚시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 옆에 앉아 물멍에 빠져들곤 했다.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우정을 나누는 절친들, 그리고 나들이 나온 가족까지 다양한 무리들 속에서 홀로 나만의 사색에 빠지곤 했다. 사실 나도 혼자는 아니었다. 한강과 소통하고 있었으니까.



울컥한 마음을 한강에 던지면 답이 왔다. 출렁이는 물결은 나에게 용기와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고, 잔잔한 수면은 냉정과 평정심을 가르쳐주었다. 가장 와닿는 울림은 바람 따라 강물이 흐르듯이 나 자신도 오로지 세상의 순리를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한강과 소통하며 허전한 가슴을 희망으로 채울 수 있었다.


한강은 옛날 내가 직장에 다닐 때도 거기에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흐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겐 어느 날 갑자기 불쑥 나타나 손을 잡아준 새 친구 같은 존재이다. 퇴직 이후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게 해 주었고 다시 세상에 나아가 네트워킹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 결과 프리랜서 자문 역할을 시작으로 힘찬 재기의 날개짓을 하게 되었으며 결국 새 직장에 취업할 수 있었다.


인생을 살다 보면 평소엔 잘 보이지 않던 것도 어느 순간이 되면 그 존재가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힘들거나 어려운 상황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그런 것들은 대게 앞만 보고 탄탄대로를 달릴 때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볼 시간도 볼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산행 중에도 힘들어 쉴 때야 비로소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예쁜 꽃이 보인다. 그래서 가끔은 멈추고 옆, 주위도 보면서 방전된 감성을 채워야 한다.


겨울이라 한강 산책이 쉽지 않겠지만, 두껍게 껴입고서라도 내 친구 한강에게 가봐야겠다.  소식도 전하고 그때 참 고마웠다고 꼭 얘기하고 싶다. 그리고 이젠 가끔은 멈추고 내가 먼저 손 내밀 수 있는 여유를 갖겠노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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