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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퓨처 Jun 10. 2022

1. 고민 많이 했습니다

보직을 내려놓고 안식년에 들어간 지 6개월째 되던 어느 날, 인사팀 과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무님, 안녕하셨어요? 김 XX 과장입니다."

"김 과장님 오랜만이에요. 무슨 일이죠?"

"오전 10시에 부원장님께서 뵙자고 하시네요."


나는 퇴임 면담 통보임을 직감했다. 왜 보자고 하시는지 묻지도 않고 알겠다고만 한 채 전화를 끊었다.  


정기 임원 인사철인 한 달 반 전부터 연락을 기다렸다. 퇴임이든 복귀든 빨리 결정이 나길 바랬기 때문이다. 회사 사정으로 계속 연기되다가 이제야 연락이 온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충격이 덜하지만, 근무 중에 전화를 받았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일하다가 바로 짐 싸서 집에 가는, 아무도 걱정해 주지 않는 임원의 퇴임 프로세스를 따라야 했을 게 아닌가.


전화를 끊고는 하루 종일 생각이 많았다. 퇴임하면 뭐 하지? 아직 젊은데. 재 취업은 잘 될까? 아니야. 다시 복귀하라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잖아. 그래, 맞아. 복귀하면 정말 잘해야지.


뜬 눈으로 밤을 새운 채 오랜만에 회사에 갔다. 그런데 주차장에 차를 대는 순간 직감했다. 내 전용 주차 공간에 다른 번호가 쓰여있었다. 내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1초도 고민 없이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래 잘됐어. 홀가분하게 털어버리고 새 출발하는 거야.


어제 전화한 인사팀 김 과장의 안내를 받아 부원장님 실로 들어갔다.


"박상무,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네, 부원장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영혼 없는 인사가 오가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고민 많이 했습니다. 물러나 주셔야겠어요. 선례를 남기면 안 될 것 같아서요."

"네, 잘 결정하셨습니다. 우리 부서원들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퇴임 통보를 받는 자리에서 부서원들 걱정을 먼저 하다니 박상무 참 좋은 분인데 운이 없었나 봐요."


마지막 말은 꼭 조롱으로 들렸다. 면담은 채 5분도 안돼 끝났다. 잘렸다는 얘기를 들은 사람이 잘 결정했다고 하는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인사팀장의 친절한 처우 설명을 듣고 고문 계약서에 사인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하던 일터로의 마지막 출근은 그렇게 끝났다.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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