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병실의 기도 소리

처음으로 코로나 병실에 들어가다

by 박재석

2020년 5월 21일,

코로나 19 감염병으로 전 세계 5백만 명 이상이 확진을 받았고, 사망자 수는 무려 33만 명이 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50 여만명이 확진을 받고 무려 9만 4천 여명이 죽었습니다. 미국 코로나 사망자 수는 베트남 전쟁 사망자 5만 8천 여명을 훨씬 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미국은 여전히 코로나와의 전쟁 상황입니다.


한편으로 미국은 전체적인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4월부터 서서히 줄어들면서 다소 진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회적 격리 정책에 대한 피로감이 터져 나오고 각 주마다 속속 거리두기를 완화하는 모습입니다. 제가 사는 캠프스 타운인 미주리주 콜럼비아에서도 여기저기 소규모 음식점들이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손님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있는 병원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이 고약한 감염병으로 인한 고통을 직접 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던 40대 남성이 안타깝게 소천했습니다. 동료 채플린의 말을 들으니 병실 밖에서 함께 기도하며 애도했다고 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목사 부부가 코로나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담당 의사와 환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환자 가족들이 겪고 있을 심리적 영적 어려움이 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통상의 경우, 환자 가족들이 병원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 직접 물어보지만 코로나 때문에 환자 가족 대표인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병원 목사라는 말에 그분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해서, 병원에서 환자와 가족들 스태프들을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심리적으로 돕는 역할을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도울 일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환자의 딸은 처음에는 말을 아끼다가 아빠가 오순절 계열 Pentecostal 목사이고, 엄마와 함께 병원에 계셔서 얼굴도 뵙지 못해 눈물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지병도 있으셔서 너무 걱정이 된다며 흐느꼈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두 분의 현재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어서 보내 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병원 정책상 환자의 동의 없이는 사진을 찍을 수 없고, 동영상으로 서로 얼굴을 보여 드릴 수는 있다고 했더니 환자의 딸이 반기며 곧장 영상 만남을 신청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중환자실 병동에 마련된 화상전화 시스템을 통해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문제는 누가 그 iPad를 들고 코로나 병실에 들어갈 것인가 였습니다. 바쁘지 않을 때는 주로 간호사들이 그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가운과 일반 마스크 장갑 등 개인 보호 장구를 아끼기 위해 저는 최대한 코로나 환자 병실 방문은 자제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직접 환자 가족의 요구가 있었고, 저도 보호안경과 N95 마스크를 지급받았기 때문에 간호사에게 이야기하고 제가 직접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다른 병동에서는 영상 통화 만남을 주선하고 온몸이 불편한 환자들을 위해 소위, 'iPad 인간 거치대' 역할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코로나 병실에서 환자를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조금 떨렸습니다. 하지만, 평소 코로나 병동 간호사들을 돕고 위로하면서 코로나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크게 없었습니다. 오히려 병실에서 어떻게 가족들을 위로할 지에 대해 마음을 모았습니다.


이윽고, 개인 보호 장구를 갖춰 입고 iPad를 들고 먼저 환자의 어머니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병실 전체를 비추며 병실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환자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보여 드리고, 얼굴 가까이로 다가갔습니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는 마치 깊은 잠에 든 모습입니다. 순간 가족들의 오열하는 소리를 들였습니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시간을 드렸습니다.


"엄마 사랑해요"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 " 한 딸이 말을 시작하자, 저도 "어떤 말씀이든지 하시라"고 거들었습니다. 저는 없다고 생각하시고 마음속에 있는 하고 싶은 말, 감정 모든 것을 표현해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십분 쯤 지났을 무렵, 보호안경에 김도 서리고, 팔도 아프고, 땀도 많이 나서 이제 함께 기도로 만남을 마무리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각자 편한 언어로 기도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두 딸과 조카 등 가족들이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함께 환자의 쾌유를 비는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우리말로 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스페인 말이 들렸고, 영어도 들였습니다. 기도가 뜨거워지고 울음소리도 섞여 들렸습니다. 정말로 벅찬 마음으로 감사와 간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옆 병실에 있는 아버지, 목사님의 방에서도 눈물과 기도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30분 정도 코로나 중환자실 병실 두 곳이 눈물의 기도 소리로 가득했습니다. 스페인어와 한국어 영어가 어우러지며 언어는 달라도 성령이 원하시는 일치된 마음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충분한 시간이었습니다. 죽음 다가와도 가족들이 직접 곁에서 애도하지 못하는 비극적인 코로나 병실이 평안과 회복을 비는 기도의 불꽃이 가득한 사랑의 공간의 되었습니다.


30분 간의 짧은 만남을 마치고, 가족들이 저와 모든 스태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저는 오히려 제가 더 큰 배움과 감동을 얻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모든 보호장구를 소독하고 중환자실을 나오기 전에 여느 때처럼 담당 간호사들에게 다크 초콜릿 하나씩을 주고 나왔습니다.


한 간호사가 환자의 어머니는 증상이 조금씩 호전되고 같은데, 아버지는 현재까지는 안정적이지만 내일은 아무도 모른다, 기도가 정말 필요한 때인 것 같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기도가 필요한 때에 정말 기도하도록 인도하신 건가?'

'왜 어떤 사람은 기도하며 간구해도 죽고, 어떤 사람은 기도 없이도 사는가?'


해묵은 신학적 질문이 머리를 때리지만, 마음만은 충만합니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함께 우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환자 가족들의 기도와 간구, 의료진들을 노력으로 목사님 부부가 꼭 다시 일어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