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해질 무렵 뒷산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산이었는데, 정상에 오르니 아직 해가 있는 서쪽은 눈부시게 밝았지만, 그 반대쪽 산 아래는 그림자로 어둡게 보였습니다. 그 풍경을 참 신기하게 느꼈습니다. 제가 서 있는 곳에서 밝은 쪽과 어두 쪽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 묘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병원에서 채플린으로 일하면서 느끼는 묘한 감정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아침에 새로 태어난 아기에게 축복하며 기뻐했다가, 오후에는 죽음을 맞이하는 중환자실 환자와 가족들과 슬픔을 나눕니다.
병원에서 마치 어린 시절 뒷산에 올라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산 아래 풍경을 보는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병원은 그래서 제게는 큰 배움터입니다.
2020년 6월 3일 새벽,
삐삐가 울렸습니다. 코로나 감염병 여파로 환자 가족들의 방문이 전면 중단된 지 석 달째입니다. 그러나, 다행히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임종을 하는 환자는 직계 가족의 방문이 허용됩니다.
병실에 들어가니, 환자의 아내와 수양딸이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60대 환자는 전날까지만 해도 건강하게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날 밤에 갑자기 쓰러져 결국 의료진도 손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뇌졸중 stroke 이 갑자기 온 것입니다.
아내는 정말로 가정적이고 교회의 장로이기도 한 남편의 갑작스러운 임종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수양딸은 자신을 거두어 신앙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게 도와준 양아버지가 감사하다고 울먹였습니다.
아직 호흡기를 떼기 전이지만 환자는 이미 의식을 잃고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습니다. 함께 애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어서 죽음 이후에 일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면 아무리 신앙인이라도 그 슬픔을 주체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지만, 그분들이 신앙 안에서 함께 의지하며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이 세상에서 새로운 삶으로 나갈 수 있게 되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날 오후, 코로나 중환자실 병동에서는 2주째 집중 치료를 받았던 어느 목회자 아내의 병세가 호전돼 의식을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코로나 병실에 들어가서 화상 면회를 했던 분입니다. 어찌나 반가웠던지 병실 앞에서 문을 살짝 열고 병세가 나아져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한 채로 상체를 저에게 약간 기울여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습니다. 지난 2주 동안 그 환자의 가족들과 화상 면회를 하며 함께 기도했습니다.
담당 간호사가 저에게 집중치료 결과로 조만간 일반 코로나 병실로 옮길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남편 목사님 방에도 들어가 가족들과 함께 다시 영상으로 함께 기도했습니다. 담당 의사는 아직 치료의 결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지는 않는다며 좀 더 경과를 지켜봐야겠다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지병이 있으셔서 치료 과정이 좀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환자 가족들은 어머니의 병세가 나아졌다는 소식에 큰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목사인 아빠를 위해 기도하는 딸의 스페인어 기도 소리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간절함만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도 영어로 다시 한번 하늘의 자비와 의료진들의 노력이 빛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퇴근 시간이 되어 병원 밖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건강하게 하루를 살아 내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저녁 근무를 위해 병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치료를 받고 나가는 사람들, 병원의 물자를 공급하는 사람들 모두가 바쁘게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누구도 자신이 오늘 밤 죽음이라는 낯선 손님을 맞이 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아마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의례히 저녁을 먹고, 쉬다가 잠이 들고 다시 일어나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미국에는 어제도 코로나 때문에 천명 가까운 사람이 죽었고, 오늘도 1,03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흑인들이고,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일 겁니다. 이 어려운 코로나 시절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백인 경관들의 무자비한 체포 관행 때문에 숨진 조지 플로이드 씨를 애도하고 고질적인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시위가 들불 번지듯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오늘 밤도 어떤 이는 중한 병에서 회복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억울한 죽음, 더욱이 막을 수도 있는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서는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생명을 지키는 일에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요.
집으로 돌아와 아파트에서 다크 초콜릿을 하나를 입에 넣고 깨물었습니다. 그리고,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먹구름 사이로 빛을 받아 영롱해진 구름을 보았습니다. 순간, 입에서는 쓴 맛이, 제 머리에는 환한 빛이 어우러져 정말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