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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May 07. 2021

고통이 우리를 부를 때

전직 기자미국 병원 채플린 생존기

3.  병원 채플린이 기도하는 상담가와 사회복지사와 간호사와 다른 점이 뭔가요?


이제 본격적으로 병원 채플린의 정체성, 그에 맞는 역할론에 대해 제 생각과 체험을 나눠야 할 시간인 것 같네요. 오하이오 주립대학 병원에서 채플린 레지던트 수련을 할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례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2016년 11월, 일반 병동을 돌고 있는데 간호사가 저를 부르는 거예요. 자신의 교회 환자가 입원했는데 같이 기도를 하자는 겁니다. 알고 보니 이 간호사는 주변에서 기도하는 간호사로 통하더라고요. 환자 방문을 마치고 혼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간호사는 환자의 이야기도 들어주고 간호도하고 또, 기도도 해주니 나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 말이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이런 간호사들이 있는데 병원 채플린이 꼭 필요할까요? 

    또, 제가 지금 일하는 미주리 주립대학 어린이 병원에는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습니다. 이 곳에서 일하는 베테랑 사회복지사가 계세요. 신생아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환자 가족을 위로하고 아기의 최후 순간을 영상에 담고, 심지어 의사, 간호사, 채플린까지 모이게 해서 함께 상담을 주도하는 아주 적극적인 사회복지사입니다. 급할 때는 아기에게 물세례까지 주기도 했다고 하네요 (천주교에서는 평신도가 위급한 순간에 세례를 베풀 수 있습니다). 제가 이 분을 만나고 나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여기서 내가 설 자리가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일을 시작한 지 2주쯤 됐을 때 신생아가 죽었다 fetal demise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 복지사가 정말 일사불란하게 환자 가족은 물론 의료진이 물러간 자리에서 주도면밀하게 환자 가족을 위로하고 마지막 아기의 가는 길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정말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분이 하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신생아의 주검을 채플린 시작하고 두 번째로 본 탓이기도 했지만, 사실 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머릿속이 하얀 백지장 같았습니다. 어린이 병원 채플린 인턴 시절 겪었던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4살 어린이가 할머니 집 수영장 물에 빠져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왔을 때, 당시 오열하던 할머니를 앞에 두고 노련하게 위로의 말을 건네던 사회복지사, 그때도 저는 그들 곁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얻었던 배움이 떠 올랐습니다. 


    ‘사회복지사가 환자를 대하는 것과 채플린 대하는 방식은 다르다,’ ‘환자와 가족들을 보살피는 팀원으로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정신을 차리고 환자 가족들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 서로 포옹하며 위로하는 부부 사이로 산모가 안고 있는 갓 태어난 핏덩이가 보였습니다. 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제 소개를 하고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침묵했습니다. 뭐라 할 말이 없기도 했지만, 그냥 산모의 어깨 위에, 갓난아기를 여윈 아빠의 등 위에 손을 얻고 눈을 감았습니다. 산모는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도, 그리고 저도 곁에 있던 간호사들도 함께 울었습니다. 나중에 병실을 돌아 나오는데 수간호사가 저에게 말을 건네더군요. 


“채플린 제이, 함께 있어 줘서 정말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 환자 가족들이 살아남은 쌍둥이 동생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한다는 이야기를 제게 전해주었습니다. 이튿날,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살아남은 쌍둥이 동생과 부모님, 간호사들이 함께 한가운데 그 아이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했던 간호사들에게도 위로와 축복을 전했습니다. 

    기도하는 간호사와 복지사, 상담사와 병원 채플린의 차이가 뭘까요? 저는 아직도 이 질문에 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환자와 가족을 보살피는 케어 팀의 일원으로서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병원 채플린으로서 분명히 병원의 사명, 환자를 살리고, 삶을 고양시는 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나 성찬을 베푸는 일에서 극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사실 병원에서는 일반 교회와는 다른 상황들이 있습니다. 개신교 기독교인들은 조금은 도전적으로 들리실지 모르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교리는 환자나 가족들에게 때때로 고통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좀 더 도전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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