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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Jul 02. 2021

희망 찾기

2021년 2월 4일, 


16개월 된 아기가 뇌사의 위험 속에 있는 한 아미쉬 가정의 젊은 부부를 만났습니다. 아미쉬는 독일계 기독교 이민자들로 신앙과 전통을 고수하며 집단생활을 하는 공동체입니다. 어린이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온 지 1주일이 다되어 갑니다. 다행히 이날은 아기의 상태가 조금 나아진 탓인지 부모들의 표정이 조금 밝았습니다. 인사를 건네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분들에게 어떻게 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희망을 찾는지 물었습니다. 


젊은 아미쉬 아빠는 긴 수염을 만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기를 생각하면 정말 힘들고 아프죠. 하지만, 우리가 가진 신앙의 눈으로 보면 저 아기도 주님의 큰 뜻 안에 있으니까요. 그게 우리 희망의 원천입니다. 살면 사는 대로, 죽으면 죽는 대로 모두 주님의 크신 계획 안에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감정까지 모두 처리되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아기의 아버지는 며칠 전 아기가 사경을 헤멜 때는 정말이지 힘들어 죽을 뻔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믿음과 삶의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아미쉬들에게 삶과 죽음은 모두 신의 뜻 안에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끝으로, 그 젊은 아미쉬 아빠는 "피조물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실을 주님의 뜻 안에서 잘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을 맺었습니다.  

    

이날 오후에는 중년에 닥친 질병으로 삶의 의미와 희망을 잃어버린 한 60대 여성을 만났습니다. 연 이은 뇌 수술로 인해 청력까지 잃게 돼 대화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2018년부터 끊임없이 찾아온 병마와 싸우다 이제 지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녀가 입술을 힘겹게 움직이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제 정말 하늘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천국은 너무나 좋은 곳이겠죠. 이제 너무 지쳤습니다. 남편도 믿는 사람이기 때문에 제 마음을 이해할 거예요." 


어느새 이 환자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저도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연이은 뇌동맥류 수술, 복부 수술, 담낭수술 등 그녀가 2년간 병원 신세를 지며 겪어야 했을 고통이 큰 파도처럼 밀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슬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 밑에서 가정 폭력과 학대를 견디며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녀의 아버지가 최근에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도 참 기뻤다고 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던 아버지가 그래도 말년에 예수를 믿고 삶을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이어, 그녀는 지금은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데, 남편 역시 믿는 사람이라서 그녀가 천국에 지금 당장 가더라도 이해할 거라는 말을 다시 꺼냈습니다. 잇다른 질병으로 인해 지쳐 삶의 희망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 제 마음도 답답했습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천국에 가는 일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 땅의 삶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도피하듯 떠나는 천국이 남은 가족들에게 기쁨을 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성도님, 만약에 남편 분이 이런 상황에서 천국에 먼저 가고 싶다고 하시면 그렇게 하시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이 여성 환자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남편이 병원에 함께 계시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와 의료진들은 환자가 가고 싶다고 해서 천국으로 가시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치료에 진척이 있기를 함께 기도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사람을 살리는 희망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 인간이 만나는 극한 상황 속에서 생존한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 생각과 행동을 했을까? 사실 이 대답은 오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반쪽짜리 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증언들을 요약하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생존 의지이고 또 하나는 관계성이다. 백절불굴이라 했던가요, 삶의 의지를 가지고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지는 과연 어디서 올까요? 


많은 사례들이 있겠지만, 내가 병원에서 경험한 일들과 책을 통해 본 사례를 종합해 보면, 이 생존의 의지는 대부분 관계를 통해 형성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믿는 사람들은 절대적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와 힘을 찾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때때로 자식을 생각할 때, 부모를 생각할 때, 담배나 술을 끊기도 합니다. 내전의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의사가 환자를 돌보고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그 현장에서 친구를 사귀는 동안 느끼는 유대감을 통해 힘을 공급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은 고통을 통과하면서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존재들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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