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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재석 Jul 02. 2021

심야 결혼식

"아빠가 나를 키웠어요" 


2019년 9월 10일 자정, 호출을 받고 찾아간 심장 중환자실 CICU,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호흡기를 입에 꽂고 누워 있는 환자를 부둥켜안고 조용히 눈물을 흘립니다. 조금 뒤 병실에서 제가 집례하는 결혼식의 주인공인 제인(가명)입니다. 그녀는 소프트볼을 하며 항상 볼을 놓쳤던 아빠를 떠올리며 눈물 사이로 미소를 보입니다. 제인은 아빠가 죽기 전에 꼭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새로 들어온 동료 채플린이 이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 밤에 환자 상태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제가 결혼식을 집례하게 된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결혼식 집례 연습을 해보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결혼 집례를 병실에서 하려고 하니 머릿속이 순간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간호사들이 벌써 꽃을 준비하고 환자 가족이 사 온 셔츠를 환자 몸에 맞게 수선하는 등 심야 결혼식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심호흡을 하고 결혼 집례 성구를 고르고 간단하게 결혼 서약문과 선언문을 장로교 집례집에서 찾아 두었습니다. 


이윽고, 병실에 들어갔습니다. 호흡기를 꽂은 환자 위에 딸 제인이 사 온 파란색 셔츠가 덧입혀졌습니다. 기도 삽관 중이라 의식은 없는 상태였지만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신부와 신랑이 환자 곁에서 먼저 기념 촬영을 했습니다. 그리고, 신부와 신랑이 환자 침대 한쪽 곁에 나란히 섰습니다. 


기도를 하고 성구를 읽고 준비한 서약 질문을 했습니다. 양어머니와 신부의 여동생이 가족 대표로, 사진 촬영을 해 준 간호사 케일라가 증인으로 함께 했습니다. 반지를 교환하고 성경에 손을 함께 올리고 제가 혼인이 이뤄졌다고 선포하자, 두 사람이 환자 앞에서 사랑의 키스를 나눴습니다. 저는 두 사람에게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병실 심야 결혼식은 15분만에 끝났습니다. 


식을 마치고 그녀는 아빠 손을 잡고 조용히 울고 있었습니다. 그 곁을 신랑이 지켰고 저는 맞은편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제인, 아빠와 참 특별한 사이 같은데 무슨 사연이 있어요?" 제인은 조용히 눈물을 닦으며, "아빠가 절 키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빠가 줄곧 자기를 돌보고 키웠다는 겁니다. 


이후 아빠가 재혼했지만, 이 딸에게는 여전히 아빠가 특별한 존재였다고 합니다. 최근에 아빠가 심장마비로 쓰러지자 제인은 그의 남자 친구와 아빠 앞에서 결혼하기로 결심하고 준비를 해 왔는데, 이 날 저녁에 의사로부터 24시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밤에 부랴 부랴 결혼식을 올리게 된 것입니다. 이튿날 오전, 제인의 아빠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호흡기를 떼고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그 존재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았습니다. 의식이 없고, 기계를 통해 호흡하고 있지만, 심장이 뛰는 동안 제인에게 그 환자는 환자 이전에 자신에게 생명을 전해주고, 삶을 지켜 준 아빠라는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누군가에게 존재 그 자체로 인식되는 것, 그것이 저는 진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제인의 아빠는 죽어서 몸이 이 땅에 없지만, 그 죽음도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이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끊을 수 없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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