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참 오묘한 일이다. 이름은, 기표의 역할을 하는 짧은 단어일 뿐이지만 그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수많은 감정의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누구의 이름은 한없이 그립다가도 지겹고, 누구의 이름은 너무 밉다가도 측은하다. 겨우 글자일 뿐인데 말이다. 그런데 ‘겨우 글자일 뿐’인 언어들은 정말 당연하게도 우리 삶과 개인의 주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앨리오와 올리버는 서로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로 한다. 자신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글자를 서로 소유하기로 한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앨리오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영어를 유창하게 사용한다. 이 언어들로, 그는 자신의 주체성을 결정하는 일을 유예시킨다. 이탈리어를 쓰는 여자친구의 말을 영어로 대답하면서 거리를 두고, 어머니와의 대화에 여러 가지 언어를 섞어 말한다. 하나의 언어로만 대화할 수 있는 상대는 올리버 뿐이다. 또한 피아노를 치면서 올리버가 좋다고 한 곡을 여러 가지 작곡가의 페르소나를 빌려 연주한다. 그러다 올리버가 채근하자, 마지막에는 자신만의 기법으로 곡을 연주한다. 유대교 목걸이를 숨기고 있었지만 올리버의 목걸이를 보고 유대인으로의 표식을 드러낸다. 이런 방식으로 올리버는 앨리오의 주체성을 찾는 성장의 과정에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의 중반부엔 바다 속 심연에 잠들어 있던 유물을 끌어올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은 하나의 주체성이 드디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와 상응한다. 이후 앨리오는 올리버와의 비밀연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일렁이던 감정들은 어느샌가 끓어 넘치고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르다가 짧은 여행을 끝으로 그들은 헤어진다. 영화의 끝에서, 앨리오가 올리버의 결혼 소식을 전화로 전해 들은 후 벽난로 앞에서 눈물짓는다. 이윽고 들리는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 어머니가 앨리오를 부르는 목소리. “앨리오.” 어머니가 읽어주던 책의 내용으로 세상을 알아가던 앨리오에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러니까 세상에서 앨리오를 부르는 그것과 같다. 올리버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리고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