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끼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머리를 빗던 손가락은, 천천히 대각선으로 방향을 바꾸더니 머리카락 한 줌을 집어 들었다. 한 줌의 머리카락은 곧 세 갈래로 나뉘었고, 달이 10년 전 시장에서 보았던 꽈배기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달은 얇게 빚어지는 꽈배기들을 새하얀 치아로 잘근잘근 씹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달'이라는 이름은 그녀의 부모가 지어주었다. 그녀의 모는 막 4살이 된 달에게 하늘의 달처럼 밝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달은 모의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달은 5살이 된 생일날, 선물로 자신 앞에 머리를 조아린 부모의 뒤통수를 받았다. 충격받은 달이 무릎을 굽히자 낯선 이들이 부모의 몸을 가격했고, 그제야 달은 낯선 이들이 원하는 '달'이 되었다. 달이 낯선 이들의 손에 붙들린 채 뒤를 돌아보았을 때, 부모는 피를 흘리면서도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에도 달은 부모의 웃음이 달을 키워냈다는 성취감인지 달에게서 해방되었다는 상쾌함인지 알 수 없었다.
달은 눈앞에 놓인 거울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손은 9번째 꽈배기를 만들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녀의 부모가 지어준 이름은 아주 정확했다. 달은 이곳에 온 이후로 태양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피부는 늘 새하얗게 관리받았으며, 생채기라도 나면 하늘이 노했다며 그녀를 모시던 사람들까지도 벌벌 떨었다. 그녀가 울면 그 눈물은 달의 성수가 되었고, 그녀가 말을 하면 달의 계시가 되었다. 달이 낯선 생활에 익숙해진 것은 이미 달이 방에 갇힌 뒤로 5년이 흘렀을 때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달의 머리에서 느껴지던 손길이 사라져 있었다. 달은 거울에 비친 12개의 꽈배기들을 바라보았다. 잔머리 하나 없이 깔끔하게 꼬인 머리카락들이 너무나 단정했다. 달은 꽈배기를 풀어버렸을 때 물결처럼 흩어져 내릴 곡선들을 상상했다. 그것은 그녀가 이번 생에 절대 볼 수 없을 모습이었는데, 곧 그녀는 정말 달이 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사라졌던 손이 거대한 머리 장식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새하얀 진주들이 줄 지어 달린 머리 장식은 달의 검은 머리 위에 놓이자 그 빛을 발했다. 달이 무의식 중에 고개를 앞뒤로 살짝 흔들자, 진주들이 흔들림에 맞추어 살풋 몸을 떨었다. 달이 보기에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손은 달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 듯 부지런히 장식의 위치를 조정했다.
모든 준비를 마치자 달은 차분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이 안내하는 대로 9년 만에 방을 나서자, 어디서 날아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공기의 향기가 느껴졌다. 달은 그 모든 공기를 폐에 다 담으려는 듯 쉴 틈 없이 숨을 들이켰다. 폐가 갑갑하게 아파올 때쯤 하늘이 머리 위를 드리웠다. 달은 머리 장식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고개를 들었다. 비록 밤이었지만 오랜만에 보는 하늘은 광활해서 눈부셨다. 하늘을 찬찬히 훑던 달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추었다. 달이었다.
손길을 따라간 곳에는 새하얀 재단이 준비되어 있었다. 낯선 이들이 재단 근처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달은 그들이 정해놓은 법칙에 따라 재단 위에 올라가 앉았다. 드디어 이 재단이 그녀처럼 그 이름값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달은 정면에 떠 있는 진짜 달을 바라보았다. 동그랗게 자신의 모습을 모두 드러낸 달 앞에 앉아있으니 스스로의 존재가 문득 부끄러웠다. 저 달빛이 치장한 그녀의 살갗과 속내, 두려움을 꿰뚫고 있는 듯했다. 달은 창피함에 달아오르는 얼굴을 느끼면서 두 팔을 위로 들어 올렸다. 낯선 이들의 소원을 빌어줄 차례였다.
달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진짜 달 앞에서 달이라는 이름을 드러내는 게 부끄러웠다. 그녀는 낯선 이들을 위해 축복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녀는 그녀의 발밑에서 타오르는 장작들을 외면하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이 누리지도 겪어보지도 못한 세상을 더 이상 눈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달의 앞에서 눈을 감았다. 그날 밤 뜨겁게 타오르는 재단에서는 달의 성수가 넘치도록 흘러내렸다.